[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서재기 씨는 몇 년 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40여년 가까이 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 늘 고향이 그리웠다. 그래서 만약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지면, 고향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됐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의 삶은 서재기 씨가 생각했던 것만큼 평온하지 않았다. 추억 속 대상이었을 때는 평화롭고 따스한 곳이었지만 생활 터전으로서의 고향은 혹독한 삶의 현장이었다. 농사일은 익숙하지 않았고, 인생 이모작을 위해 시작한 특화작물 재배는 실패를 하게 됐다. 그로 인해 서재기 씨는 많은 빚을 떠안게 됐다. 그래도 서재기 씨는 절망하지 않고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날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수확을 하고 있었다. 초여름이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한여름처럼 더웠다. 토마토 따기에 열심이던 중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서재기 씨 초?중학교 선배이기도 한 마을이장 한충만 씨였다.

“이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다른 일이 아니고 자네 몇 년 동안 자동차세를 안 내고 있었더고만. 이 사람아, 왜 자동차세를 안 내고 그랬어? 형편이 어려워도 낼 것은 내야지. 그리고 우리 마을에 장기 체납자가 있으면 나도 그렇고, 마을도 체면이 안 서니까 이번 달까지는 납부하도록 해.”

“아니! 제가 자동차세를 안 낸 것을 이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체납된 자동차세 납부 독려하라고 군에서 알려줬으니까 알지.”

서재기 씨는 이장에게 자동차세 체납에 관한 것은 개인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인데 이장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 아니냐며 따졌다. 하지만 한충만 이장은 자신은 군청에서 준 정보를 가지고 군에서 협조 요청한 대로 수행했을 뿐이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또한 애초에 자동차세를 잘 냈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오히려 핀잔을 줬다.

한충만 이장과 통화를 끝낸 서재기 씨는 군청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신분의 이장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군청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군청은 한정된 공무원 인력으로 많은 체납자들에게 세금 납부를 독려하는 것이 어려워 조례?규칙상 읍?면장이 임명한 준공무원인 마을이장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매년 원활한 체납세 징수를 위해 체납자 명부를 이장들에게 주고, 이장이 개별적으로 연락해 납부를 독려케 한다고 대답했다.

인권위는 지방세 담당 공무원이 개인별 체납 정보를 마을 이장에게 넘긴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체납 정보는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볼 때 당사자의 사회적 평가에 직접으로 영향을 주는 민감한 개인정보라서, 제3자에게 이를 공개하게 될 경우 당사자의 명예와 신용이 손상되는 등의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때문에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의 체납정보를 이장에게 제공한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다.

체납 납세 독려를 위해서는 마을이장을 통해 개별 연락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마을 방송이나 현수막, 문자메시지 발송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설령 마을이장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것은 납세 독촉 고지서 전달과 통지 등 단순 업무여야 한다. 하지만 체납자들의 구체적인 체납액 등을 확인하고 체납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독촉 전화를 하는 것은 조례 등에 위임된 이장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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