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

풍경을 가지러 길을 떠난다. 목적지는 가을의 심장 속, 그곳으로 거침없이 행군하여 나아간다. 심장으로 난 길은 오솔길로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남의 가슴을 누가 예의도 없이 두드리는가.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찾으러 간 양 의기양양 발을 들이민다. 길 위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의 속도가 아닌 산객의 속도에 등 떠밀려 들어간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단풍의 속도는 25킬로로 밤낮없이 강행군했나 보다.

단풍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 경북 봉화 산골에 닿은 것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가을의 심장은 별천지다. 나무가 꽃처럼 별처럼 노랗고 빨갛고 푸르게 반짝거린다. 만추의 기운을 고즈넉이 누리고 싶은데, 여유로운 감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등산객이 왁자하게 가을의 심장 속으로 물밀듯 몰려든다. 그들은 오로지 산을 오르기 위하여 달려온 사람들인 것 같다. 화려하게 수놓은 단풍 구경은 고사하고 지하철 역사에서 쏟아낸 사람들처럼 산길을 질주하는 형상이다. 지인 한 분은 이미 그들 속에 파묻혀 파도처럼 밀려가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길가로 밀려나 어서 그들이 스쳐 가길 기다릴 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사진 속 가을 풍경이 되고 싶었다. 정녕 사진 한 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만추의 풍경 속에 오롯이 서 있는 석탑과 소나무, 산객들. 나를 이곳에 닿게 한 대상이다.

둥그런 산봉우리 여섯 개가 원을 그리듯 연꽃처럼 피어나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인 유리보전은 연꽃의 수술처럼 우뚝 서 있다. 깎아지를 듯 절벽에 위치한 산신각에 오르니 꿈에 그리던 풍경이다.

만산홍엽 배경으로 우뚝 선 오층 석탑과 뿔난 소나무가 사진과 똑같다. 가을의 심장에 든 청량사의 만추는 정녕코 그 아름다움을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다. 바람이 무한 청량하여 청량사인가.

바람이 잠자는 가 싶다가도, 어디선가 나타나 머리칼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또한 바람은 산길을 걷는 내내 온몸의 배인 비루한 기운과 오욕(五慾)을 씻어준다.

가을의 심장은 바람을 보내 인간의 심장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다. 산길을 내려가는 길목이다. 찻집 울타리에 검은 새 모양의 솟대가 인상적이다. 목을 길게 내민 솟대는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형상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심장이 검게 타다 못해 몸뚱이까지 탄 것일까. 노랗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선 검은 솟대는 찻집 주인과 닮은 것 같다. 그는 사람이 싫어 산중에 들었단다. 그의 말이 모순이라는 걸 몇 마디 대화에서 알아챈다. 그는 그리움과 기다림에 목멘 사람이다.

신이 가을의 심장 속으로 보낸 이유가 따로 있다. 계절의 심장 속에선 산객처럼 질주하지 말고 느림보가 되길. 더불어 사람이 그리운 영혼과 차 한 잔의 공덕을 베풀길 원한 건 아닐까. 샛노랗게 물든 단풍 속 검은 솟대의 시선을 따라간다.

가을의 심장 속에서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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