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지난 19~20일 이틀에 걸쳐 철원 DMZ(비무장지대) 일대로 생태평화 교원연수를 다녀왔다. 여태까지 경험한 통일교육 연수 중 단연 으뜸이었다. 최근 남북 화해 국면 속에서 생태와 평화, 통일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새롭게 생각해보는 연수였다.

생창리 생태평화공원에서는 전쟁의 상처와 함께 잘 보존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철책을 자유로이 들락거리는 흰 나비 떼, 전쟁으로 부서진 암정교, 화강 주변의 왕버들 군락, 젖은 깃털을 말리는 가마우지, 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등이 기억에 남는다. 생태평화공원이 분단의 역사가 만든 초록의 세상이라면 앞으로는 미래를 여는 생태평화공간으로 거듭나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마침 철원군에서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선정을 추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성 유적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제가 경원선 철도를 설치하면서 동서로 찢고 그 위에 다시 군사 분계선이 남북으로 나눠 놓았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정확하게 자리 잡은 성터. 지금은 지뢰와 잡목으로 뒤덮인 역사…. 태봉국 도성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남북 정상이 개성 만월대와 더불어 공동 발굴을 합의한 데 이어 국회에서 발굴 지원을 위한 특별법도 검토한다고 한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공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휴전선 일대의 평화를 드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접한 철원군의 역사는 슬픔 자체였다. 일제 때는 소작농으로 황해도, 평안도, 경상도 사람들이 이주한 터였고, 일본인 농장주와 수리조합의 수탈을 못 이겨 많은 군민이 간도 등지로 떠나갔다. 철원은 또 해방과 분단 시대 동안 ‘38선과 휴전선에 갇힌 섬’(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이었다. 남북전쟁 직전에는 많은 이들이 인민군으로 끌려가고, 더러는 산 속에서 토굴을 파고 숨어 있었으며, 전쟁 중에 이른바 '수복지구'가 되나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삶의 현장이었다.

부서진 노동당 건물, 끊어진 경원선 철로, 멈춰선 월정리역 기차를 보며 전쟁과 파괴, 분단과 단절을 체험했다. 남으로 흐르는 한탄강, 북에서 찾아온 두루미들, 인간이 그은 선들 따위와 상관없이 단풍으로 이어진 산들을 보며 생명과 자연을 되새겼다.

휴전선의 모든 대립이 사라지고 무기들이 자취를 감추는 날은, 함께 손잡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할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다시 우뚝 선 태봉국 도성을 바라볼 날은, 연결된 경원선을 타고 백두대간을 향할 날은 또 언제일런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피터 드러커)이라는 말이 있다. 통일된 미래, 평화로운 세상을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실천이 유일한 답이다. 남북의 정치 지도자 뿐 아니라 국민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육자도 빼놓을 수 없다. 분단은 끊어짐이고, 비생명이며, 죽음을 부르는 저주다. 통일은 이어짐이고 생명이며 부활의 축복이다. 분단과 적대를 넘어 통일과 화해를 만들어가는 시대정신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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