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1년 전쯤, 한 남성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처방받고 싶다며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들과 소꿉장난 하는 것이 더 좋았고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싶었으며 노력을 해도 그 욕구를 없앨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의사로서 성 정체성 검사를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사실 인간의 성 정체성은 남성의 성 염색체(XY)를 가졌다고 해서 남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 모체의 자궁에서 성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남성의 뇌, 여성의 뇌가 결정되는 것이다. 뱃속에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하게 되면 이 남성처럼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이 그 사람의 성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신비함이라는 아우라를 주입시켜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만들었다는 여성주의가 있다. 여기에서는 여성을 모성이라는 신비로 속박하고 있으며, '탈(脫)코르셋' 운동 또는 '하이힐을 벗어 던지라'는 주장, 또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고 꼬집으며 기혼자들을 '망혼자(결혼으로 삶이 망했다는 의미)'로 묘사한다. 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는 이해이다.

여성은 진실로 사회적 타자일까? 인간은 서로에게 아우라를 씌우는 존재로 실존한다. 그 이유는 인간 두뇌의 진화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진화론은 다윈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성 선택, 짝짓기 게임에서는 암컷의 특권을 강조한다. 이것이 로날드 피셔의 '고삐 풀린 성 선택론'이다. 수컷 공작의 꼬리가 과도하게 화려한 것은 암컷이 그런 수컷을 선호하기 때문이며, 여성이 똑똑하고 헌신적인 남성의 두뇌를 선호함에 따라 인간의 두뇌가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암컷의 성 선택론은 여성주의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발전했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작의 암컷이 꼬리가 짧은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듯이 남성은 근육질에 수염이 있고 거친 목소리를 가진, 소위 남성호르몬적인 여성과 짝짓기를 선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와도 같은 고삐 풀린 성 선택은 성호르몬의 특징을 통해 진화된다. 이제는 여성도 남성을 유혹하게 되었고, 남녀 모두 상대에게 아우라를 씌우는 복잡한 성 선택 방식으로 진화했다. 자궁 속에서 노출된 성 호르몬에 따라 진취성, 온화성, 이성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호모사피엔스'의 탄생인 것이다.

인간의 진화와 본성 앞에 하등동물의 이데올로기는 설 곳이 없다. 그 순간 '파시즘'이 된다. 병원을 찾아왔던 남성의 여성적 정체성을 우리는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이힐을 신든 코르셋을 벗어 던지든 모성을 강조하든 이는 각자의 세상이며, 그대로를 존중해야 한다. 남녀로 단순하게 구분하는 순간 파시즘이 될 수 있고 한쪽 성은 타자가 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녀평등을 넘어 남성혐오, 여성혐오로 번지는 성 대결이 가속화되고 있다. 다윈은 생존경쟁보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성 경쟁이 더 강력하다고 봤지만, 점차 사라지는 일자리 면에서 보았을 때는 생존경쟁이 더욱 강력하다. 대량생산의 산업화 시대에 맞벌이 가족이 이상화되면서, 여성은 끊임없이 유급노동시장으로 호출됐다. 결혼을 미루고 맞벌이까지 하면서 생존경쟁을 펼쳤다. 국가와 시장은 부국 강세를 누리고 있지만, 한 개인은 갈 곳이 없어진 상태다.

성 선택은 허영일 뿐 한국 여성의 미혼율은 40%에 달하고 있으며, 1인가구가 점차 증가하는 시대이다. 맹자는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이라는 말을 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으로, 곧 내가 괴로우니 남을 혐오하는 마음뿐인 것이다. 이러한 생존경쟁의 일부가 성 대결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페미니즘도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여성을 타자로 보는 후진성을 탈피하고, 성 대결이 아닌 인간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풍요로우면 너그러워진다. 항산(恒産), 풍요로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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