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북스테이, 책 속에서 뒹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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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북스테이, 책 속에서 뒹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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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년 10월 10일 13시 19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0월 1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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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속초의 '완벽한 날들' [사진/전수영 기자]
▲ 서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속초의 '완벽한 날들' [사진/전수영 기자]
▲ 충북 괴산의 가정식 서점 '숲속 작은 책방'
▲ 충북 괴산의 가정식 서점 '숲속 작은 책방'
▲ 숲속작은책방의 북스테이 게스트를 위한 다락방 전경
▲ 숲속작은책방의 북스테이 게스트를 위한 다락방 전경
▲ 속초의 '완벽한 날들'
▲ 속초의 '완벽한 날들'
▲ 서가 뒤로 지역 주민이 그린 그림이 걸린 벽이 보인다.
▲ 서가 뒤로 지역 주민이 그린 그림이 걸린 벽이 보인다.
▲ 2층 게스트하우스의 2인실
▲ 2층 게스트하우스의 2인실
▲ 속초 동아서점의 서가
▲ 속초 동아서점의 서가
▲ 속초 동아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손님
▲ 속초 동아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손님
[연합이매진] 북스테이, 책 속에서 뒹굴기

(괴산·속초=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혹독한 여름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안식처를 찾고 있다면 책 속에 파묻혀 뒹굴며, 오로지 책과 함께 가을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작은 서점이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과 만나 책과 함께 머무는 곳, '북스테이'(book stay)다. 책 속에서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지만, 때로 자연에 기대고, 때로는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가독서(賜暇讀書). 조선 임금 세종이 젊은 문신들에게 책 읽으라고 주던 휴가다. 지난여름, 유례없는 더위에 에어컨 바람만을 찾아다니느라 정작 쉼은 없었던 나에게 스스로 사가독서를 주기로 했다. 세종의 신하들처럼 거창하게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거나 학문의 세계를 파고들 것은 아니었지만, 텔레비전이 없는 곳에서 스마트폰도 꺼두고 마음 가는 책과 함께 침잠할 수 있다면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 책 가득한 다락방에서 하룻밤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은 북스테이라는 이름을 처음 내세운 곳이다. 일산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했던 백창화·김병록 부부가 5년 전 이곳 전원 마을로 내려와 살림집 구석구석에 좋아하는 책을 가득 채웠다. 유럽의 책 마을과 도서관, 서점을 돌아보고 '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부부가 나름으로 꿈꿔온 새로운 책 공간을 실현에 옮긴 것이다.

낮은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꽃과 나무가 자라는 마당부터 책 읽기 좋은 공간이다. 마당 양쪽에 직접 지은 오두막 두 채에는 저렴하게 파는 중고 책들이 채워졌다. 날 좋은 오후, 비스듬히 해가 비쳐드는 오두막 안에서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거나,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려 편하게 넘겨보기 좋은 책들이다. 반대편 오두막 해먹에 누우면 책을 펼쳐 들기도 전에 파란 하늘에 흐르는 구름과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금세라도 단잠에 빠질 듯 편안하다. 현관 옆 야외 데크에도 빛바랜 고전들과 캠핑용 의자가 놓였다. 새소리, 매미 소리를 배경 삼아 책 읽기 좋은 자리다.

현관에 들어서도 신발보다 책이 많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상을 받은 그림책들 사이에 어느 작가가 선물한 고양이 그림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층 높이의 거실 책장은 물론이고, 통로까지도 대부분 책이 차지하고 있어 벽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책이 꽂히고 쌓여있지만, 또 많은 책이 표지가 보이도록 놓여 있다. 메모지에 손으로 써 붙여놓은 추천 글에도 눈이 간다. 원래 표지에 두르는 띠지로 만들던 것을,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바꿨다고 한다.

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잡지·출판 분야에서 일했던 부부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목록을 훑으며 감으로, 촉으로 책을 엄선한다. 주인장의 관심과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작은 책방의 존재 이유이자 매력이다. 내가 가진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보이면 반갑고, 슬며시 주인장과 나 사이에 모종의 신뢰가 생기면, 옆에 있는 처음 보는 책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핸드 메이드 종이에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한 인도 출판사 타라 북스(Tara Books)의 그림책과 원화 액자는 다른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작품'에 가깝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환영하는 책방이지만, 그냥 구경만 하고 나갈 수는 없다. 책방에 들어오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상 사야 한다. 책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의 질문에 응대해주다 보니 만들게 된 원칙이다. 어린이 책도 비닐 포장을 풀어놓는 대신 망가뜨리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하고, 보다가 망가뜨린 책 역시 사야 한다.

거실이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라면, 방문객이 머무르는 2층 다락방은 작은 도서관이다. 방문객들의 모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과 피터 래빗 캐릭터상품이 가득한 계단을 올라가 왼쪽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책장을 쓱 밀면 애벌레 모양의 작은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다. 어린이를 위한 팝업북과 종종 끌려오는 책 싫어하는 어른을 위한 만화책까지 고루 갖췄다. 책 사이에 놓인 그림이나 장난감도 모두 책과 관련된 것들이다. 평소 책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책 읽기에 호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주인장 부부의 바람이 세심하게 담겨 있다. 맞은편에 있는 객실 역시 하늘로 난 창문 아래로 책이 가득 꽂혀 있다. 작은 침대가 하나 있지만, 가족이나 마음 맞는 친구 서너 명이 바닥에서 뒹굴며 책을 읽어도 충분한 공간이다.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이 모이는 북클럽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자의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풀벌레가 우는 저녁 마당에서 음악회가 열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웃, 게스트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마을잔치가 된다. 10월 말까지는 최향랑 작가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믿기 어렵겠지만, 엘비스 의상실'의 원화 전시가 이어진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supsokiz)에서 숙박을 예약하거나 행사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북스테이 네트워크(http://bookstaynetwork.com)에는 전국 10여 곳의 북스테이가 모여 있다.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책방들이 각기 다른 지역,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운영되고 있다.

◇ 호흡도, 시간도 한 박자 느리게

설악산과 대포항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던 속초를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 이유가 책을 사고, 보고, 읽기 위해서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형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으로 고사하다시피 했던 동네 서점은 2014년 말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개성 있는 독립서점으로 되살아나는 중이다. 서울에서 NGO 활동을 했던 30대 부부도 지난해 남편 최윤복 씨의 고향인 속초의 구도심,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에 서점이자 카페, 게스트하우스인 '완벽한 날들'의 문을 열었다. 10여년 전,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꿈꿨지만 그때는 이루지 못했던 최 씨의 소망을 다시 이룬 곳이다. '완벽한 날들'은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에서 따왔다. 2층 게스트하우스의 방 유리창에 새겨놓은 '완벽한 날들'의 한 구절,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문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그 이름을 빌려 온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원 마을 속 '숲속작은책방'이 연륜 넘치는 50대 부부가 만든 북적북적한 동네 사랑방 같은 인상이라면, 바닷가 마을의 오래되고 아담한 2층 상가 건물을 리모델링한 '완벽한 날들'에서는 호흡이 한 박자 더 느려진다. 주인장의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공백이 많은 서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낮게 읊조리는 듯 흐르는 음악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서점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최윤복 씨는 "독서실도 아닌데 편하게 이야기 나누셔도 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손님을 맞는 주인장의 목소리가 워낙 낮고 차분하다 보니 덩달아 목소리 볼륨이 낮게 맞춰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침 주인장만큼이나 조곤조곤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강아솔과 권나무의 곡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열린 강아솔의 콘서트는 입소문에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카페를 겸하는 1층 서점에서는 김수영 시인 50주기를 기념해 동네 서점 에디션으로 출간된 '달나라의 장난'과 피천득의 수필 선집 '인연'이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차지하고 있다. 입구 바로 옆 서가는 독립출판사의 인문학책과 시집, 여행 에세이 등 여행자들에게 권하는 책들과 노트, 서점의 기획 제작 상품 등으로 채워졌다. 왼편의 서가는 여백이 많다. 책등을 보이며 꽂힌 책 옆에는 넉넉하게 공간을 두고, 책표지가 보이도록 세워놨다.

굳이 베스트셀러로 채워놓을 필요는 없다며 주인장이 골라 놓은 책 중에는 에세이가 많이 보이고, 존 버거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을 따로 모아놨다. 국내 소설 코너에서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 옆에 마땅히 있을법한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물으니 역시나, '쇼코의 미소'와 함께 막 팔린 뒤 다시 채워놓기 전이었다. 식물이나 고양이 책도 한자리를 꿰차고 있고, 한가운데 놓인 매대와 카페 안쪽 서가에는 그림책도 적지 않다. 이곳에서도 타라 북스를 소개한 책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가 가장 눈에 잘 띄게 세워져 있어 반갑다.

서점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게스트하우스다. 1인실, 2인실, 6인실로 나뉜 방은 고급 호텔과는 다른 느낌으로 정갈하고 단정해 마음이 편해진다. 거실 겸 식당에서 폴딩 도어를 열면 이어지는 널찍한 테라스로 나가 서면 산 공기도 바다 내음도 느껴진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여행자들을 반기는 서점이지만, 지역과 지역 사람들 사이에 문화 공간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도 서점의 목표이자 과제다. 주인장이 10년 전부터 꿈꿨던 대로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 모임이 2주에 한 번씩 열린다. 낮에 한팀, 퇴근 후 저녁 시간 한팀으로 굴러가고 있다. 서점 안쪽 큰 테이블이 놓인 자리 뒤의 벽은 책이 아닌 그림이 차지하고 있다. 속초 출신 화가인 김종숙 씨에게 그림을 배운 지역 주민들의 작품이라고 했다. 이라크 전쟁의 실상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박기범 작가의 글에 김종숙 씨가 그린 유화가 더해진 그림책 '그 꿈들'을 다시 한번 펼쳐보게 됐다. 속초를 담은 상품으로 속초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주인장의 말에 내심 다음을 기약했다.

◇ 62년째 제자리 지키는 동네 서점

'완벽한 날들'과 함께 속초 책 여행을 완성해주는 것은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동네 서점이다. 1956년 할아버지가 문을 연 동아서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인 김영건 씨가 매니저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던 영건 씨가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문 닫으라고 이야기했던 서점을 맡은 건 2015년 1월. 이후 아버지의 서점보다 훨씬 넓은 곳으로 이사하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지만, 참고서와 여성지, 문구류까지 다 팔았던 예전 그 시절, 그 동네 서점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대신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을 비롯한 독립출판물들이 서점 한가운데 명당자리를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해변 풍경을 담은 사진집, 물에 젖지 않는 워터프루프북을 모아 '낮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등 지역과 계절, 선호를 모두 담은 큐레이팅도 돋보였다. 동아서점만의 베스트셀러 1위는 영건 씨가 쓴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당신에게 말을 건다'였다. 옛날 서점과 요즘 서점이 공존하는 이곳에는 당연히 옛날 손님과 요즘 손님이 어우러진다.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은 영건 씨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넨 뒤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여행자인듯한 젊은 손님들은 책방을 돌아보거나, 소파에 앉아 책에 빠져들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