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한조각에 한잔 30여년 꾸준한 그 맛

▲ 60년대 중반부터 대전 시민들이 즐겨 찾는 먹거리로 자리잡아 온 진로집의 두부두루치기는 아직도 70년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술 잔을 부딪히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신현종 기자>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시뻘건 고추장에 호박, 대파 등 갖은 채소를 숭숭 썰어 넣고 거기에 뜨거운 두부를 살짝 볶은 '두부두루치기'가 그것이다.

가을 바람을 맞으며 소주 한 잔에 두부 한 조각을 베어 먹는 그 '맛'은 아마 대전 시민 중 30대 중반 이상의 시민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먹거리일 것이다.

요즘은 먹을 것이 지천이어서 독특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지만 30여년 전만 하더라도 돈은 물론 제대로 된 음식조차 없었다.
그러한 시절, 값싸고, 양 많으며 맛있는 집이 있었으니 바로 대전시 중구 대흥동의 '진로집'이 그곳이다.

휘영청거리는 네온싸인이 밤을 낮처럼 밝히는 대전여중 앞, 폭이 2m도 않되는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가면 '진로집'이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손님을 부른다.

그러나 여닫이식 대문을 열고 홀을 바라보는 순간, 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7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하얀 담배연기와 음식에서 올라오는 훈기가 따뜻하게 안을 감싸고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진지한 목소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귓가를 스치는 등 아직도 이런 곳이 대전에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골만 1000여명에 이른다는 이집은 손님들의 연령층도 그만큼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집을 찾은 손님만 하더라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한동 전 총리, 이봉학 전 대전시장 등 유명인사를 비롯, 2대나 3대째 이집의 단골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친정 어머니에 이어 지난 75년부터 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남인순(56)씨는 "예전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 온 어린아이가 어느새 결혼을 해 남편하고 자식들과 함께 우리 집을 다시 올 때는 그렇게 기쁠 수 없다"며 "아마 음식 장사의 보람이나 즐거움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흐뭇해 했다.

이집의 '두부두루치기'는 30여년을 훌쩍 넘은 집답게 '두부두루치기'뿐만 아니라 김치 한 조각, 간장 한 종지에도 시간의 흐름이 배어 있다.
또 이 음식들에는 지난 세월,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던 서민들의 허기와 슬픔이 간직돼 있다. 주인 남씨의 큼직한 손은 그런 서민들의 탁자 위에 넉넉함을 더했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와 백김치는 몇 그릇을 달래도 짜증이 없다. 오히려 꾹꾹 눌러 가득히 담아 내오는 '정'이 있을 뿐이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요즘 말로 '있는 집'에서만 '간식'으로 즐긴 '두부두루치기'를 일반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호강이었다.
시뻘건 고추장에 범벅이 된 두부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맛이란 소주 안주로 그만이었고, 양이 많아 밥을 먹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요즘에도 간혹 운신하기 어려운 노인분들은 이런 진로집의 '두부두루치기'를 잊지 못해 자식들에게 시켜 사 가곤 한단다.
물론 그 많은 단골들이 대부분 그런 추억의 맛을 즐기려 이집을 찾아오겠지만.

이 가을이 가기 전, 가족과 함께 '예전의 맛'을 찾는 것이 어떨까. 특히 피자나 치즈에 맛을 들인 아이들에게 우리의 맛을 경험시켜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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