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극을 즐기던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배역을 나타내는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고 이는 오늘날 '사람(person)' 혹은 '인격(personality)'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극장'에서 각자 맡은 배역에 따라 저마다의 페르소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자녀, 형제 혹은 직장 직원, 사장, 의사, 변호사, 부모로 말이다. 사실 이러한 페르소나 즉 가면이 있기에 인간은 삶 속에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페르소나와 맨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에 있다. 페르소나 즉 저마다의 가면을 자신의 본성(맨 얼굴)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성공이나 권력, 탁월한 미모를 자기 자신의 본성으로 오인하기도 하고, 가면 속 맨 얼굴은 읽지 않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숙명인 페르소나를 맨 얼굴과 조화롭게 구분하지 못하면서 오만과 편견을 가지게 된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著)에 나오는 유명한 글이다. 하지만 소설 속 각각의 인물들은 페르소나에 가려진 진실한 마음을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가면에서 보았던 오만과 편견을 벗겨낸다.

문제는 벗겨지지 않는 관념의 페르소나이다. 관념을 덮어쓰면 도덕적 가치가 생기고, 도덕을 이원론적 측면에서 다루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이 유발된다. 도덕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인간에게 폭력이 되었는지는 조선 500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은 패망한 송나라의 학문인 주자학을 받아들인다. 주자학은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묶는 논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명나라는 '인간은 사농공상에 상관없이 스스로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품성을 하늘로부터 다 부여 받았다'는 양명학을 받아들인다. 인간을 차별하는 신분제가 희석되고 서자도 관직에 나갈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시기 유럽도 영주제를 스스로 해체하고, 특히 산업혁명 이후 도덕을 과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킨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조선 500년은 주자학이라는 관념의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채, 가혹한 양반-상민 차별과 노비라는 각자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다. 17세기 조선은 전 인구의 30~40%가 노비였고 서자는 관직에 들어 갈수가 없었던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면 왕권을 도전하는 것으로 삼족이 멸하는 사회였다.

맨 얼굴에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은 인간의 삶속에서 기껏해야 오만과 편견을 낳지만 이 또한 인간의 성숙의 밑거름일 뿐이다. 하지만 관념의 페르소나는 한번 쓰면 인간의 맨 얼굴을 볼 수 없다. 도덕적 우월감과 폭력이 나올 뿐이다. 헤겔과 칸트로 대표되는 관념의 나라 독일은 히틀러를 만나면서 1·2차 대전을 일으킨다. 인간의 본성을 뒤덮은 관념의 페르소나가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드높이면서 폭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직도 한국은 도덕의 나라다. TV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지식인들은 은연중에 주자학이 심어놓은 도덕주의적 관념을 들어낸다. 대중은 개돼지와 같다고 말하는 고위 공무원, 포토라인에 선 정치인의 독립투사 같은 행동, 여성혐오의 테러, 워마드 페미니즘의 과격한 행동, 이 모두 관념의 페르소나이다. 관념의 가면을 썼기에 도덕적 우월감이 있고, 사람의 맨 얼굴로 할 수 없는 거짓말, 폭행, 과격한 일탈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가혹한 사농공상의 가면을 씌우고도 전혀 죄책감이 없었던 것과 같은 관념의 폭력이다.

인간의 도덕은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도덕도 과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킨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또한 맨 얼굴에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따뜻하게 받아들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가면은 인격이 되지만, 관념이라는 가면을 쓰면 인간의 맨 얼굴은 없어지고 도덕주의만 남는다. "도덕주의는 개인을 끝내버릴 수 있다"고 지적한 미셀 푸코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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