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入虎穴不得虎子>

중국 최초의 역사책인 사기(史記)의 편찬법을 따르고 그것보다 더욱 정밀하며 학자풍인 문장이라고 하는 전한(前漢)의 역사책인 한서(漢書)의 편찬을 시작한 사람은 후한(後漢) 초인(기원전 1세기) 반표(班彪)였다. 형과 누이동생 사이에 끼어서 자라난 반초(班超)는 학자답고 인텔리 냄새를 풍기는 사나이처럼 생각될 것이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서기직(書記職)에 싫증이 난 그는 마침내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 뜻을 세우지 못하고 있겠는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을 복종시킨 저 장건(張騫)과 같이 멀리 국외에서 큰 공을 세우고 영지(領地)를 받아 버젓하게 살고 싶다.

언제까지나 붓하고 씨름만 하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직을 내동댕이 쳐버리고 말았다. 동료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라고 비웃었으나, 반초(班超)는 소인물들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냐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뒷날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어 면직을 당했으나 흉노를 공격하는 두고(竇固)를 따라 그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게 된 것은 거의 四十이 되려고 할 무렵이었다.

“요즘 우리를 냉대하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아는 일. 자칫 잘못하면 우리를 흉노에게 넘겨서 포로로 만들 수작이다”하고 일동의 의견을 물었다.

적지 깊숙이 들어 온 이상, 목숨은 반초에게 맡겨 놓고 있다고 일동에게 반초는 말했다. “호혈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자를 얻지 못한다(불입호혈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 이제 길은 단 하나, 밤을 타서 흉노의 사신을 화공(火攻)해 버리자. 그렇게 하면 선선왕도 혼줄이 나서 우리들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이렇게 해서 화공(火攻)을 당한 흉노병은 대혼란, 반초는 3명을 죽이고 30여명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백여명의 적을 불로 사(死)하였다. 흉노의 사신의 목을 본 선선왕이 한(漢)에 복종을 맹서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 前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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