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일반적으로 영장류를 포함한 포유동물은 늙어가면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어릴 때의 귀여운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태한다. 어린 침팬지 얼굴은 둥굴고 귀엽지만, 번식기 이후 성호르몬이 나오면서 이마는 평평하고 눈썹뼈는 크게 튀어나오며 얼굴이 길어진다. 성격 또한 포악해지고 욕심이 많아지며 완고한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만큼은 이 법칙에서 예외이다. 사춘기 이후 2차 성징이 일어나도 어린 시절 귀여운 모습 그대로며, 의식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스스럼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이 줄어 들 줄 모르고, 어떨 땐 천진난만하기까지 한다. 이것을 인간의 유형성숙(Neoteny)이라고 한다. 유형성숙은 양서류에만 있는 현상이다. 양서류 중 환경과 영양 조건이 상당히 좋은 경우 갑상선 호르몬이 감소해 번식기 이후 어른으로 변태되지 않고, 귀여운 올챙이 모습으로 번식도 하고 삶을 살아간다.

사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나고 오랜 양육기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이끌어내는 치명적인 '매력덩어리'가 되는 것이 어린아이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부모 또한 아이의 귀여운 매력에 빠져들면서 피곤함도 잊은 채 자녀를 위해 헌신하게 된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 스토리'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주요한 진화는 성숙을 지연시키고 어린 시절을 더 연장시키는 것, 유형성숙이라고 했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공존했던 5만 년 전의 화석을 비교해보면,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과거 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보다 더 귀엽고 왜소하며 두뇌도 작았다. 네안데르탈인 각자는 다부지고 힘도 세며 IQ도 좋았지만 서로 으르렁거릴 뿐 협업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힘이 약했던 현생 인류는 유형성숙을 통해 부모와 다른 어른들에게 교육받을 시간을 늘릴 수 있었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체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극복했다.어쩌면 현대 인류가 보유한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 기술과 예술 작품, 수많은 즐길 거리들도 유형성숙 본능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지식소비 환경이 바뀌고 있다. 과거 산업화 사회는 인쇄문화시대였다. 일정기간 학교와 선배에게 인쇄된 지식을 배워 평생의 금자탑을 세웠다. 이는 학문의 완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시대로, 배움이 곧 계급이 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새로운 지식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으며, 수학·물리·인문학 등으로 분화되던 학문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지식이 인쇄되는 순간 과거의 지식이 되면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전혀 대화를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1세기 지식은 지속적으로 파편화되고 있다. 따라서 인쇄된 지식만으로 금자탑을 세우는 학습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개념을 세우고 직접 체험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고대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겼던 학습 본성인 유형성숙인 것이다. 치명적인 인격으로 매력덩어리가 되면서 협조를 이끌어내는 능력, 보고만 있어도 신뢰가 가는 행동,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지식에 대한 겸손, 이 모두가 체험의 지식을 습득하는 유형성숙의 특징이다. 훌륭한 사람을 쫓아 지식을 체험하고 일을 통해 신개념을 장악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새로운 사람 또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 나가는 것이 21세기 유형성숙 학습법인 것이다.

이처럼 유형성숙의 존재 유무가 21세기 계층을 초월하는 사다리가 되고 있지만 모든 양서류가 유형성숙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육체와 어린아이와 같은 탐구심, 장난기, 애착이라는 풍요로운 마음을 끝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 이것을 포기하는 순간 성숙(mature)단계로 들어서게 되며, 유형성숙이 끝나면서 스크루지 같은 옹고집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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