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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림시집
수요와 공급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더러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하고 수요가 몰릴 경우 가격이 인상되거나 물량을 조절하지만 시장경제에서 수요, 공급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 이런 경제학적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의 하나가 출판 분야 특히 문학 작품 출판의 수요공급관계가 아닐까 한다. 크게 보면 출판사가 기획으로 펴내는 책을 제외한 모든 자비 출판물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일단 책을 만들어 놓고 수요를 찾는다. 그리고 '시장'을 전제로 하는 '상품'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제품'상태로 남아버려 일반적인 수요공급 사이클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시인 수만 명을 헤아린다는 한국 문단에서 적어도 5년에 한 권 씩 시집을 출간한다고 해도 그 물량은 어마어미하다. 극소수 지명도 있는 시인이나 이른바 메이저급 출판사가 펴내는 시리즈 시집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자비로 출판되고, 기증 형식으로 소비된다. 적게는 200만원 남짓에서 수백 만 원이 드는 출판비를 필자 부담으로 만든 시집은 ISBN을 붙이고 정가를 명기하였음에도 수요공급 구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독특한 소비 사이클을 보인다.

대체로 그만그만한 디자인과 편집, 천편일률적인 형태에 몇 년마다 시집을 펴내는만큼 오래 축적된 작품에서 양질의 시편을 뽑아내기 어렵다보니 완성도가 미흡한 작품은 물론 축시나 손주에게 주는 덕담까지 모두 모아 수록한 결과 읽어볼 흥미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몇 년마다 비슷비슷한 시집을 만드느니 오래 뜸들여, 다소의 경제적 지출을 감안하더라도 누구나 탐낼만한, 소장가치가 있는 문화상품으로 시집을 한권쯤 펴내볼 만하다. 고 이가림 시인(1943∼2015)이 생전에 출판한 시잡<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만하다. 포(布) 케이스에 담겨 한지에 활판인쇄도 독특하고 제작한 사람들의 이름이 판권에 명기되어 있다. 손으로 한 권 한 권 꿰매 만든 공들인 시집은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집의 물결 속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렇게 정성들인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독자 역시 정성들여 읽게 되고 서가에 소중하게 보관하게 되지 않을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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