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폭력성은 어디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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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폭력성은 어디서 온 걸까
  • 연합뉴스
  • 승인 2018년 07월 05일 13시 56분
  • 지면게재일 2018년 07월 0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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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인간 폭력의 기원'…전쟁의 뿌리는 문명
우리의 폭력성은 어디서 온 걸까

신간 '인간 폭력의 기원'…전쟁의 뿌리는 문명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인면수심(人面獸心). 인륜을 저버린 흉악한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흔히 짐승에 비유한다.

여기엔 사람에게 동물적 본성에서 비롯된 폭력성이 내재해 있다는 믿음이 깔렸다.

그러나 같은 종족에 대한 인간의 강한 적의나 무자비한 폭력은 다른 동물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

일본의 저명한 영장류학자인 야마기와 주이치 교토대학교 교수는 저서 '인간 폭력의 기원'(곰출판 펴냄)에서 오늘날 인간이 드러내는 폭력성의 뿌리가 동물적 본성이 아니라 문명에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40년 가까이 고릴라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사회와의 비교 연구를 하는 저자는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책은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노, 긴팔원숭이 등 유전적으로 인간 1~3%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유인원들이 서식 환경에 따라 인간과 비슷하거나 다른 무리 구조를 형성하고 그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갈등 해결 수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가 스스로 폭력성에 주목하게 된 건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다.

전후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전문 수렵인으로 진화해왔고 그 결과 수렵에 사용한 무기를 인간끼리 겨누는 전쟁을 일으키게 됐다는 설(說)이 확산됐다.

'수렵가설'로 불린 이 설은 전쟁과 폭력성을 인류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구실을 했으며, 더 나아가 전쟁이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합리화를 낳기도 했다.

저자는 수렵가설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호히 반박한다. 인간의 폭력성은 본성에 뿌리박힌 게 아니라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인류가 수렵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700만 년의 진화 역사 가운데 고작 40만~50만년 전부터며,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한 건 기껏해야 1만년 전이다. 무기를 사용한 전쟁의 증거는 약 1만년 전 농경이 시작된 이후에야 발견된다는 것이다.

원래 150명 정도였던 인간 무리가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빈도도 늘어났다.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는 일반 포유류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두 배 정도 높은데, 인간의 경우 문명화 이후 10~20배나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을 강화한 구체적 요인으로 '땅의 소유'와 '언어의 출현', '공동체의 기원에 근거한 정체성'을 든다.

농경과 정착생활로 인해 생긴 전에 없던 생활의 경계가 분쟁을 유발하게 됐으며, 언어를 통한 추상적 사고가 환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신화와 종교에 의해 강화된 집단의 정체성이 외부로 향하는 적의와 공격성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대의명분 때문에 일어나고 수행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병사들은 자신의 희생이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란 신념 속에 전선으로 향하지만, 정치가들은 사회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돌리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전쟁을 악용한다.

저자는 인류가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양한 '공감능력'이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폭력성을 강화하는 역설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야생의 침팬지도 집단 간에 싸움을 한다. 혈연관계의 수컷들이 집단으로 이웃 무리에 몰래 침입해 수컷이나 암컷을 물어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들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먹이와 성(性)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개체 간의 이익과 욕망의 다툼이다.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되면 싸움은 멈춘다. 그런 점에서 동물들의 싸움은 상대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전쟁이나 대량살상 같은 인간이 자행하는 조직적 폭력은 동물들의 싸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폭력은 폭력 자체, 즉 상대방을 말살하고 멸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때가 많다.

관찰 결과에 따르면 침팬지는 싸움을 한 뒤 화해에 매우 적극적이다. 공격을 한 쪽도 당한 쪽도 어느 쪽이 먼저랄 것 없이 다가가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껴안고 털 고르기를 해 준다. 서열이 높은 수컷이 우위성을 과시면서도 자신의 지위를 인정하는 하위 수컷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이다.

보노보노는 무리 내의 긴장이 높아지면 다양하고 적극적인 성 행동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고릴라는 화해를 할 때 바싹 다가가 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며, 싸움이 일어났을 때는 제3자가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문명화 과정에서 잘못 길든 인간의 사회성을 본래대로 회복하기 위한 실마리를 다른 영장류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사회성을 떠받치고 있는 근원적 특징은 공동 육아, 공개적인 식생활과 함께 먹기(共食), 근친상간의 금지, 대면 커뮤니케이션, 제3자의 중재, 언어를 이용한 대화, 음악을 통한 감정 공유 등이다. 영장류로부터 물려받아 독자적 형태로 발전시킨 이런 능력들을 활용해 인류는 서로 나눠 갖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것은 결코 권력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공동체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 공동체로부터 출발해서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짜 올라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승동 옮김. 348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