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무숙(叔孫武叔)이라는 노(魯)나라 대부(大夫)가 “자공(子貢)은 중니(仲尼)보다도 현인(賢人)이다”라고 평하고 있듯 자공(子貢)은 세속적인 지혜와 재각(才覺)으로는 남보다 뛰어나 있었다. 그런데 세속적인 지혜나 재각은 인간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자기’와 ‘남’이란 상대적인 입장에 자신을 두고 있다. 그런 ‘인간’ 상대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 뛰어나면 뛰어나 있을수록 자기를 과신도 하고, 자만심도 생길 것이다.

어느 날 이 자공이 “어떻습니까 이것 참 좋은 생각이죠”하며 아주 자신만만한 낯으로 “저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자공의 자못 의기양양한 “자기의식”이 맘에 들지 않아 딱 잘라 핀잔을 주었다. “그건 자네로서는 불가능한 일야.” 공자는 자기를 공허(空虛)하게 만들고 ‘하늘’의 권위에 따르는 것, 그 ‘가르침’ 즉 도(道)에 골몰하는 것을 인생의 본의(本義)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공과 같이 자기의식을 품으면서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행위는 사실로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공(子貢)의 이 생각은 아집(我執)을 버리고 하늘에 귀일(歸一)하기 위한 요처(要處)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자공이 겸허(謙虛)하게 “무엇이든 한 말씀 종신(終身)토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말씀은 없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것은 사정을 알아주는 것이리라.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하지 말라(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基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하고 자동자신의 착상(着想)을 자공에게 되돌려 주었다. “서(恕)는 자기를 포기하는 데서 가능해 진다. 따라서 공자는 이 말에 의해 ”아(我)에서 떠나라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가르침은 고제자인 증자(曾子)가 “선생님의 도(道)라 성의(誠意)와 동정(同情) 바로 그것이다”고 말하고 있듯, 교의(敎義)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내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은 남의 인격을 존중하라,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인격의 독립과 존엄을 인식한 데서 나타나는 모랄리티이고 공자의 경우는 이런 근대개인주의 사상과는 반대로 자기 그 자체의 포기를 요청하고 있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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