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만 대전지방변호사회 제1부회장

20세기가 낳은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와 시대를 앞선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화가로서의 천재성과 열정, 자신만의 삶을 추구한 같은 점과 살아생전 부와 명예, 많은 여인들과 함께 92세 장수하고도 사후까지 신화가 된 피카소와 경제적 궁핍, 정신적 방황, 독학으로 자신만의 내면적 세계를 추구한 반 고흐는 분명 다른 점을 갖고 있다.

피카소는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를 낳은 문화강국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말라가에서 1881년 태어났으며 부친은 화가로서 산 텔모 미술학교에서 데생을 가르쳤다. 아버지로부터 데생을 비롯한 미술기본교육을 배운 피카소는 13세 때 이미 아버지의 실력을 뛰어넘어 부친은 아들의 미술교육에 전념하기 위하여 자신의 붓을 놓았다고 한다. 피카소는 전 생애를 거쳐 청색 시기, 장미빛 시대, 입체파 시기, 초현실주의, 현실참여주의의 회화방식을 추구하였으며, 그가 남긴 작품은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를 비롯하여 회화 13500여점과 조각품 700여점 등 3만 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피카소가 지향한 삶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자유를 향한 양심의 소리를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로 인하여 르네상스 이후 오랫동안 고수하여 온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회화방식이 일거에 무너지고 20세기 근대회화의 문을 열게 한 것도 자유에 대한 열정의 한 표현이며, 프랑코의 파시즘에 저항한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 된 ‘게르니카’ 또한 양심의 소리를 전한 것이다. 피카소는 생전 여덟 명의 여인과 함께 뜨거운 사랑의 삶을 영위하였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여자를 한 그림 안에 넣어서 표현을 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열정을 보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준데르트에서 아버지 개신교 목사 데오도루스 반 고흐와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6세까지 헤이그에서 구필화랑 화상, 견습교사, 서점 점원,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선교사 등을 전전하였다. 고흐가 그림 공부를 시작한 것은 27세이며, 헤이그의 안톤 모브의 화실과 벨기에 안트베르펜 미술학교에서 회화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던 중 견해차이로 곧 그만두게 되었고, 혼자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기법을 완성하였다.

고흐가 추구한 회화 방식은 양식화되고 정형화된 미를 표현하는 것보다 진실한 삶, 진정성, 내면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화폭에 담는 것으로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을 강조하였으며,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침실’에서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액자, 두 개의 그림을 침실에 담아 고갱을 향한 기다림을 고스란히 표현하였다. 고흐는 내면의 정신적 고독함을 동생 테오에게 무려 668통의 영혼의 편지로 전하였는데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느니 차라리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도 그 중 하나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다.

피카소도 고흐도 모두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추구한 대표적 화가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 생각만큼 녹록치 않은 현실, 도대체 인생은 얼마나 어려운 선택의 바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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