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 ‘시지프스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인간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신을 기망한 죄로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받아 산꼭대기에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고, 굴러 내려오면 또 올려놓는 무한반복 노동의 형벌을 받는다.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00년 전, 그러니까 하루 16시간 노동이 법적으로도 허용됐던 시절 당시 경제학의 거두는 케인스였다. 그는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2030년이 되면 온갖 기술의 발달로 경제 수준이 8배 이상 성장하고, 주 15시간만 일하는 미래의 청사진을 선언을 한다. 케인즈는 인간을 이성적 판단이나 노동의 가치보다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질주하는 동물적 정신(Animal spirits)을 가진 존재로 보았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소득이 증대되면 인간은 야성적 충동으로 과감한 소비를 하고, 이를 통해 경제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케인즈의 예언처럼 기술의 급진적 발전은 오늘날 노동시간 주 5일,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기여했다. 아마도 2030년이면 4차 산업혁명의 결실로 인공지능(AI)이 산업현장에 배치되면서 인간의 일자리 60%는 로봇이 대신 할 것이 예상된다. 더군다나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2025년부터는 노는 사람이 천지가 될 것이다. 케인스가 말한 탈노동 및 여가의 삶이라는 꿈이 성금 다가오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 경제학자 모리오카 고지는 현대사회는 ‘죽도록 일하는 사회’라고 꼬집는다. 이제 가정도 일터가 되는 ‘과노동’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의 발전으로 일자리까지 없어진다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는 죽지 못해 일하는 시지프스의 노동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과노동과 탈노동이 혼재 하는 삶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40~50세였던 19세기, 경제 철학은 인간의 동물성(Animality)에 기반을 뒀다. 인간은 죽으면 끝이라는 철학을 가진 칼 마르크스와 케인즈가 대표적이다.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동물적 충동을 매개로 발전했다. 처음엔 남편이 산업현장에 뛰어들었고, 더 나은 풍요를 위해 부인도, 또 자녀도 투입됐다. 하지만 노령인구까지 투입되면서 4대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면서, 과노동과 탈노동이 혼재하게 된 것이다.

케인즈가 말한 2030년의 탈노동 시대는 평균 수명이 100세이고, 공장과 자동차 등 세상 모든 것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시대이다. 이제 19세기 경제 철학은 21세기 인간의 삶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을 동물성으로 본 케인즈와 달리, 20세기 작가 알베르 까뮈는 인간 본질에 방점을 둔다. 알베르 까뮈는 무의미한 시지프스 노동 속에서 인간을 저마다의 목표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인식하며, 인간의 강인한 창조성을 역설한다. 독일의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마르크스적 노동을 하는 인간들을 비판하며, 인간의 본질을 말했다. 기계적 노동(Labor)을 넘어 인간은 작품(Work)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Action)할 수 있어야 인간이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공장뿐만 아니라 자동차, 기계, 가전제품 모든 것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다. 기존의 일자리는 없어지고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나 알베르 까뮈의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봐야 한다. 평생의 삶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인간의 본질에 방점을 둔 노동 말이다. 케인즈의 동물적 충동으로 돈과 욕망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이, 탈노동과 시지프스의 과노동이라는 권태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의료산업화만 해도 새로운 일자리가 30만개 이상이 창출된다. 중국은 제조업을 뛰어넘어 인공지능이라는 4차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무역전쟁이라는 미치광이 소리까지 들으면서 관세 폭탄과 법인세를 낮추어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인공지능과 제조업을 연결하면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노동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 국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 막 시작된 세상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망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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