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 대전흥룡초등학교 교사

2001년 3월 2일 교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지났다. 솔직히 그때의 내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은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선사하는 매력적인 선물 같다.

2001년 그 때의 나는 어설프지만 열정 가득한 풋풋한 청년이었다. 행동이 앞서 실수를 종종하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17년 동안 숙성된 완생(完生)의 선생님인가? 분명 어느 부분에서는 완생(完生)의 향기가 날 듯도 하지만 현실은 교직 생활에 익숙한 것을 넘어서 안일해지지 않았을까? 나 자신에게 아래와 같이 반문(反問)해 보고 싶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인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 등 매우 기본적인 내용을 나는 잘 지키고 있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선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제일 먼저 나온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지금의 나처럼 말로써 모든 것을 하려고해서는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학습이론으로 유명한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보보인형실험’을 통해 아이들은 본받을 대상이 있을 때 그 어른들의 행동을 쉽게 모방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아이들은 관찰을 통해 학습한다.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말만큼 학생들에게 보여지는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한 횟수만큼이나 내 자신에게 엄격한가. 다시 한 번 반문해 본다. 멋있는 선생님, 훌륭한 선생님, 존경받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달라져야만 한다.

돌이켜보면 17년 전 나의 모습은 비록 어설프지만 열정이 가득했던 청년이 아니었던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스승은 17년 전 나일 것이다. 문득 첫 출근을 위해 옷을 사고, 교단에 서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밤새 고민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근 첫날 학생들 앞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머뭇거렸던 나였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환하게 웃던 나를 되돌아본다.

이제부터 가장 기본적이고도 어려운 언행일치(言行一致)를 하기 위해 내 자신을 단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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