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고름.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앞길을 여며 고정시키기 위해 가슴 근처에서 매는 약간 폭이 있는 두 개의 끈이다. 당초 저고리가 길어 고름이 없었다. 고려 후기 저고리가 짧아지면서 고름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자주고름은 슬픈 사연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푸른 기와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나직이)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 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메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 울고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임아….<조지훈의 '별리(別離)'>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부르던 못 잊을 동무야' <일제 강점기 백난아의 '찔레꽃'>

'별리'는 색시가 임(남편)과 이별의 슬픔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이별의 슬픔에 흘린 눈물이 얼룩진 옷의 부분이 자주고름이다. 아마도 눈물을 훔치기 위해 긴 자주고름을 이용했던 것이다. '찔레꽃'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등을 위해 고향 떠나 타향을 전전했던 남편들의 향수를 표현했다. 자주고름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던 아내를 떠올려 타향의 설움을 달랬던 것이다.

왜 고름이 모두 자주 색상이었을까. 한복 색상에 따라 고름 색상도 여러 가지일 텐데 말이다. 고름은 색상에 따라 다는 주인공이 달라진다. 아무 색상이나 달 수 없었다는 얘기다. 자주색 고름은 결혼한 사람만이 단다. 미혼자나 사별한 자는 자주색이 아닌 옷과 같은 색상의 고름을 달아야 했다. 시나 노래 주인공들이 모두 남편을 둔 아내들이다. 그래서 자주고름에 눈물을 훔치고 입에 물고 이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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