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보수적 야성…여당 장악 가능할까

2014년 새정치연합 ‘승리’ 했지만 네곳 중 두곳선 아찔한 표차 ‘신승’
지역정당 없는 충청 최대 격전지 “중원 차지해야 선거 승리” 공식도
단 한번도 여당 장악 못한 충청권 6·13 어떤 결과 낼지 관전포인트

2014년 6월 4일 치러진 제6회 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중원인 충청을 모두 장악했다. 이른바 '예상 밖 싹쓸이'였다.

당초 충남지사 한 곳만 승리가 점쳐졌던 상황 속에서 대전시장과 세종시장은 물론 충북지사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낸 것이다.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새정치민주연합과 그 전신인 정당이 중원에서 모두 승리한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다.

전통적으로 충청권은 '중원을 차지해야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공식이 생겨났을 정도로 전체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며 민심의 바로미터로 불려왔다. 영·호남의 지역주의 투표가 강한 구도에서 매번 충청권이 전국단위 선거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여야 지도부가 제6회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 날인 22일 일제히 충청 지역을 찾으며 표심 몰이에 나섰던 이유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전과 세종시 두 곳, 민주당이 충북과 충남 두 곳의 단체장을 확보해 이미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룬 상태였던 만큼 당시 지방선거에서 여야의 중원 싸움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 전체 선거 판세가 박빙으로 치달음에 따라 좀처럼 표심의 향배를 종잡을 수 없는 충청 지역이 최대 승부처로 부상했다. 당시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대전은 새누리당이, 충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세종과 충북은 백중세(伯仲勢) 지역으로 꼽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뒤엎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압승'이었다.

충남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후보가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를 상대로 낙승을 거뒀다. 현재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두문불출하는 신세가 됐지만 당시 안 후보는 재선에 성공하면서 '대권 잠룡'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됐다. 새누리당보다 훨씬 낮은 정당 지지율을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대전의 경우에는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선거 초반 20%p 넘는 격차로 뒤쳐지던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가 새누리당 박성효 후보를 맹추격해 결국 승리를 거뒀다. 권 후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심판 여론에 힘입어 막판 '뒷심'을 발휘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첫 광역급 선거를 치른 세종시에선 새정치민주연합 이춘희 후보가 현역이었던 새누리당 유한식 후보를 상대로 거뜬한 '탈환'의 승리를 거뒀다. 세종시장 선거에 나선 두 후보의 재대결로, 2년 전 시장 선거에선 유 후보가 승리했지만 늘어난 '공무원 표심'이 이 후보에게 쏠린 것으로 해석됐다.

여야가 막판까지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던 충북지사 선거에선 현역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후보가 새누리당 윤진식 후보에 맞서 2%p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수성했다.고향(충주)과 출신 고교(청주고)가 같은 두 후보는 2008년 18대 총선에 이어 두 번째 맞대결을 펼친 끝에 두 차례 모두 이 후보가 승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충청 대승'은 충청권 지역 연고를 앞세운 정당 없이 치러진 첫 선거임과 동시에 '무주공산'에서 야권이 이례적인 싹쓸이를 한 첫 사례이기도하다. 지난 1~3회 지방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4회 선거엔 국민중심당, 5회 선거엔 자유선진당 등 충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존재했다. 특히 자민련은 충청권 '맹주'로 불리며 한때 위력을 발휘했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충청지역 시·도지사 선거는 대전과 충남, 충북 모두 자민련이 석권했다. 대전의 첫 민선 시장은 자민련 출신 홍선기 시장이었으며 충남은 심대평 도지사, 충북은 주병덕 도지사가 승리했다. 이외에 자민련은 강원까지 깃발을 꽂으며 4곳에서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2년 3개월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5곳을 차지한 것과 비교 해봐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까지 자민련의 위력은 이어졌다. 이 당시에도 자민련은 또다시 충청권을 모두 휩쓸었다. 홍선기 대전시장과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연임에 성공했으며 이원종 충북도지사가 새롭게 합류했다.

이때 1회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3년 뒤에 2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이유는 원래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나 국회의원 선거와 격년마다 교차해 치르기로 하면서 첫 선거에 한해 임기를 3년으로 정해둬 1996년 총선이 열린 2년 후 열리게 됐다.

이처럼 기세를 이어가던 자민련이지만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선 충남 한 곳에서만 승리를 거두고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힘을 잃었다. 박빙을 겨루며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대전의 경우 홍선기 시장이 끝내 한나라당 염홍철 후보에게 패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충북의 경우에는 이원종 지사가 연임에 성공했으나 그가 손에 든 깃발은 이미 자민련이 아닌 한나라당 깃발로 바뀌어 있었다. 자민련 심대평 후보가 한나라당 박태권 후보를 상대로 24만 4000여표로 충남지사 3선 고지에 올라선 부분이 그나마 위안거리가 됐다.

2006년 제4회 때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창당한 국민중심당이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한나라당이 전역(대전시장 박성효, 충남지사 이완구, 충북지사 정우택)을 석권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2010년 열린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자유선진당 창당과 함께 이회창 총재가 6년 만에 다시 총재직함을 달고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지만 대전 한 곳만을 탈환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선진당은 기초단체장 13명과 광역의원 41명, 기초의원 118명을 배출하는 등 대전과 충남에서 광역·기초의회 모두 원내 1당으로 의회를 장악했다. 충청 출신 거물 정치인의 '대'가 끊기면서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거대 정당에 밀려 힘을 잃었지만 여전히 기초단위에선 그 기세가 남아있던 셈이다. 하지만 결국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명맥을 이어오던 지역정당이 완전히 사라졌고, 선진당 소속 단체장과 의원들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역의 '맹주'가 사라지면서 충청권이 여야 모두가 공을 들이는 최대 접전지로 부상한 시점과 맞물리는 해이기도 하다.

충청권의 또 다른 특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당이 장악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권에선 자민련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선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권에선 선진당이 차지하는 식이었다. 정리하자면 '보수적 야성(野性)'이라는 충청 지역의 독특한 정서가 이어져온 셈이다. 결국 어느 한 쪽이 몰표를 가져가기 어려운 '스윙 지역(특정 정당의 우세가 두드러지지 않는 지역)'이면서 집권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로 균형을 이루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힘을 싣는 '보수적 정서'가 강한 곳이란 분석이다.

2014년 당시 충청권 네 곳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이겼지만, 네 곳 중 두 곳이 아찔한 표차의 '신승'이라는 점이 이런 지역적 특징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중앙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측면도 공존해온 만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뤄진 정권교체가 이번 충청권 지방선거에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주목되고 있다.

백승목 기자 sm1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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