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묵직한 선거공보물을 차근차근 들여다 본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올 지방선거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나열한 공약이나 정책에 있어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자 간의 변별력이 거의 없고 특히 단체장과 의회 의원 사이의 명확한 역할 구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자체에 건의와 제안은 가능하겠지만 단체장의 행정 집행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 의회의 본질적 기능인데 이런 지방자치의 하이브리드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 사회의 문화 감각과 다지인 수준이 엄청 향상되었다지만 선거공보물 편집은 예나 지금이나 천편일률적이어서 식상해진다. 눈에 띄는 참신한 구성과 후보자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신선하고 설득력있는 콘텐츠를 찾기 어려웠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기준과 지침에 따라 내용을 채웠다지만 해묵은 판박이 이슈의 재탕 삼탕은 정치에 대한 권태감을 부추긴다. 중요 정당 후보자는 여러 쪽에 걸친 묵직한 홍보물을 만들었고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2쪽 짜리가 대부분이었다. 각자 만들어서 선관위에 제출하는 방식이라지만 분량을 일정하게 통일시켜야 돈도 덜 들고 참신한 신인들의 정치권 진입이 수월해질 것이다.

그래서 4년 전 지방선거 때 보관해둔 선거홍보물을 다시 꺼내 들여다 보았다. 당시 출마해서 당선되었던 인물이라면 그때 내건 공약을 4년간 얼마나 이행했는지 확인하려는데 수월치 않다. 애당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했거니와 어느 정도 실천한 공약이 있어도 그것을 당사자 혼자만의 역량과 업적으로만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 출마한 사람의 경우 기존 인물들과의 차별성이 중요한데 이 역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 지방 자치의 곡절많은 최근 현대사를 지켜본 유권자로서 각자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나름의 판별력과 '감'이 이끄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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