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2008년 6월 16일 오후 4시50분. 파키스탄 카라코럼 히말라야 차라쿠사지역의 한 무명·미답봉이 충북인으로 구성된 직지원정대원들에게 처음으로 정상을 허락해준 날이다. 사람에게 처음 문을 연 이 봉우리는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7월 27일 직지봉(JIKJI Peak 6235m)으로 명명됐다. 우리 이름으로 명명된 단 하나의 히말라야 봉우리 '직지봉'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직지원정대가 일군 성과는 연일 화제가 되면서 공중파 방송 3사 퀴즈프로그램 문제로 출제됐으며, 초등학교 교과서 우리 지역 바로 알기 편에 실리기도 했다.

1년 후 직지원정대는 여세를 몰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의 히운출리(6441m) 북벽에 새로운 직지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히운출리 북벽은 5000~6000m까지 80~90도의 바위벽으로 이뤄져 있으며 6000m 이상의 정상부는 거대한 빙하가 올라 앉아있는 마의 벽이다. 고소적응과 루트관찰을 마무리하고 23일 베이스 캠프부터 짐을 지고 떠난 대원들! 바위벽에 붙어 해 볼만하다며 걱정 말라던 악우들은 2009년 9월 25일 8시15분 "컨디션은 양호하고 진행상황이 좋다. 등반 중 무전이 어려우니 오늘 비박지에 도착하면 무전을 드리겠다”는 교신을 끝으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 히말라야의 별이 됐다. 열정적이던 직지원정대원들의 도전 시계는 멈췄고 아직도 마르지 않는 눈물만이 세월의 흐름을 알린다.

직지봉이 탄생한 지 벌써 10년! 히말라야에 일궈진 우리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의 기상이 녹아있는 봉우리는 주인 없는 고아가 됐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와 무명·미답봉이던 직지봉은 사람의 도전과 창조적 정신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1377년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돼 '한 걸음 한 걸음' 도약해 가는데, 파키스탄에 있는 직지봉은 청주시민 또한 직지원정대원들을 기다리며 외롭게 지내고 있다. 베이스 캠프에 만들어진 타임캡슐 '소망탑' 안에 간직한 청주시민들의 10년 뒤 소망 또한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누가 빛을 보게 할 수 있을까?

직지봉 탄생은 정상을 올랐다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2007년 도전에 실패하고 재도전하기까지 대원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곳이다. 또한 마지막 기착지 후세마을 사람들과의 소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실패에 굴하지 않고 마을 학교 및 산사태 피해 주민을 찾아 봉사와 아픔을 함께 나눴다. 그에 감동한 마을주민들은 산군 뒤편에 숨겨진 외로운 봉우리 이름을 직지봉으로 부를 것을 당국에 청원했다. 우리는 자주 찾을 것을 약속했고 후세 마을의 도움을 약속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10년 세월이 흘렀고 '직지봉'은 히말라야에 하나뿐인 한글이름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외롭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

6월 13일 새로운 도지사와 시장이 탄생 한다. 충북도와 청주시를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직지봉을 찾아 10년 전 시민들의 소망을 찾아내고 새로운 소망을 담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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