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파리 몽마르트르 거리 압생트 광고판
지금 서양 여러 나라에서 판매되는 술 압생트는 색소와 향료혼합 제재 등을 배합하여 맛과 색이 만들어지는데 19세기 유럽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초록색 '악마의 술' 압생트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이미 있었던 압생트는 1792년 프랑스 의사가 전승되던 제조법을 집성하여 향쑥, 회향풀 등을 원료로 다시 탄생시킨 것으로 특히 유럽 예술계에 끊임없는 스캔들을 만들어내며 문화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쓰면서도 개성적인 맛의 초록색 액체 압생트는 결과적으로 작가, 화가, 지식인 등의 영감과 창작열을 불러 일으켰고 19세기 당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진원지였다. 지금은 거장으로 존경받고 있으나 당시에는 변두리 무명 예술인들이었던 이들, 특히 고흐의 경우 삶과 예술에서 압생트가 미친 영향은 컸는데 결국 압생트 중독과 이런저런 궁핍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이했다. 부르주아가 득세한 사회는 소외된 예술가들에게 압생트를 마시도록 부추긴 셈이었다.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한 압생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바탕에는 섹스, 살인, 마약, 중독, 환각 등과의 연관성이 떠오르면서 19세기 유럽 사회의 이면을 장식한 기제로 자리잡았다. 병충해로 와인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그 대체재로 자리 잡았지만 진실과 와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구설수로 결국 금지령이 내려지기까지 압생트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밝고 어두운 양상을 동시에 상징하였다.

시대가 바뀌어 압생트 환각 작용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바로 잡히면서 이제는 상점과 술집에서 선호되는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다<사진>. 18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기간, 압생트가 겪은 온갖 영욕은 그대로 근현대 문화예술사, 대중사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압생트를 따른 뒤 구멍 뚫린 스푼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그 위로 얼음물을 떨어뜨리며 녹이는 동안 초록색 액체는 우윳빛으로 바뀐다. 모든 것이 급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독특한 향과 긴 여운의 압생트를 앞에 놓고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 시대로 돌아간다면 고흐, 드가, 모네, 베를렌, 헤밍웨이, 와일드 같은 예술가 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 전공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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