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포럼]
고해신 ETRI 광통신부품연구그룹


필자는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토록 중요한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명쾌한 대답을 못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나마 책을 많이 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열심히 이런저런 책을 읽었지만, 도무지 창의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린시절 나에겐 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만 같았고,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과 같은 천재들이 해야 할 것만 같은 '연구'는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진학한 대학원시절, 연구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공학 분야 연구는 기본적으로 현재 기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것이 실제로 잘 동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논문을 한 편씩 읽으면서 내 분야의 연구자들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보기 시작했다. 창의력을 발휘해 완전히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연구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많은 연구들의 과정과 결과들은 관련 분야를 탐구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기존 실험이나 결과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였고, 일부 실험과정이나 구성 요소의 변화로 큰 성능 개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분야에 적용되던 기술을 차용해 또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유의미한 시각을 제공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등 큰 진보를 이루는 훌륭한 결과도 많았다. 즉, '창의력'을 발휘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구보다는, 기존 결과들을 충실히 파악하고 분석해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연구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내겐 연구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심어준 소중한 계기가 됐다.

ETRI 입사 2년차였던 작년은 충실하고 꼼꼼한 고민과 분석이 좋은 연구를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던 시간이었다. 필자는 광통신부품 연구팀에서 양자암호통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맡았는데, 대학원에서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기는 했었지만 직접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꼼꼼히 익히고, 기존 연구들의 접근방식을 충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만큼 당연해 보이는 것들도 하나씩 분석하고 정리했다. 그러던 중 양자암호통신 신호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구현하는 방식에 따라 레이저가 특이하게 구동되는 특성을 발견했다. 시스템 동작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필자는 이 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연구 논문들을 찾으면서 분석했고, 그 원리를 파악했다. 다시 말해 양자암호통신 시스템이 해킹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학계에 보고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창의력이라는 단어로 연구에 대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분야를 충실히 공부하고, 꼼꼼히 탐구하는 자세로 분석하고 고민한다면 누구든지 훌륭한 연구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창의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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