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어린아이는 넘어지고 상처받지만, 다시 일어나 상처를 치유하며 굳은살을 만든다. 그러면서 성장해 어른이 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오늘날처럼 국민청원 및 국민신문고, 국민투표 등의 방법으로 개개인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존재했으나 의식이 그에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어린아이의 시절이 있었고 상처를 받고 치유하며 어른이 됐다.

196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생채기를 입었다. 당시 대통령은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을 당선시키고자 사용해서는 안될 방법을 이용했다. 공명정대한 선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밀이 엄숙히 지켜져야 했지만 수많은 농촌지역에서는 3인 또는 6인 조별 선거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개표 시 표수가 선거인 명부 수보다 더 많기도 했다. 처음의 항쟁은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어린 학생이 봐도 선거가 상식에 맞지 않게 이뤄져서였다. 학생들의 시위는 잠잠해질 줄 몰랐다. 그러다 직장인들로 구성된 넥타이부대가 항쟁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대학교수들 또한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그동안 곪았던 것이 한순간에 터졌다. 거센 여론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하게 된다. 비상식에 항거한 국민들의 승리였다. 한반도에 공화정이 들어선지 대략 40년만의 일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기념식을 시행한다. 우리 세대는 항상 선배 세대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학업에, 밥벌이에, 연구에 잠시 손을 떼고 비상식에 쉬이 항거할 수 있을까. 이 자리는 기념을 넘어서 과거로부터 민주주의 의식을 배우는 자리다. 선배 세대들은 쉽게 하기 어려웠던 투쟁을 했고 우리의 세대는 선배들의 수혜를 받고 있다. 오늘날 주어진 민주주의 환경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아닌지, 매번 되새기며 감사해야 할 것이다. 1960년 4월 거리에 나선 아무개를 기념한다.

정혜심<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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