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문은수 천안시복지재단 이사장


젊은 시절, 인생 목표 설정을 놓고 꽤 긴 망설임이 있었다. 의료분야 성공을 위해 남들이 오르지 못한 큰 도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스승으로부터 임플란트 시술분야에 도전을 권유받았다. 그 스승은 당시 임플란트 분야 선구자로 인정받는 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임플란트 분야가 겨우 첫발을 내딛는 수준이었다. 게다다 수술 과정도 복잡해 학계에서조차 ‘사람 잡는 기술’이라고 평가하던 시절이라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고민 끝에 스승을 믿고 개척자적 마음으로 그 길을 선택했고 임플란트 분야에 최고가 되기위해 끊임없이 단련했다.

온갖 잡일을 다하면서도 의사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며 지내야 하는 수련의 시절은 그야말로 상노동의 연속이었다. 치과대학시절 인턴 삼신(三神)이란 말이 있다. 일하는데는 등신, 눈치 보는데는 귀신, 밥 먹는데는 걸신. 대부분의 수련의는 잠시라도 틈만 나면 누워 쉬려고 했다. 당연히 시키는 일만, 그것도 죽을 힘을 다해도 수행하기 벅차했다. 하지만 나는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만이 전부일 수 없었다. 내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행(?)끝에 목표했던 바를 달성했고, 그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작은 목표 하나 하나를 달성해가는 과정은 작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내 마음엔 '성공 습관'의 인이 박히기 시작했다. 이런 작은 성공들은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내 인생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박봉의 인턴 월급으로 명망있는 학자들의 비싼 강의를 일부러 찾아다녔다. 이런 습관은 전공의 과정을 마칠 때까지 이어 갔고 석사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감히 말하건대, 내 논문은 내 삶의 최고 걸작 중 하나였다고 자평하고 싶다. 무엇보다 보람 있었던 점은 내가 실험하고 연구하며 만든 자료들이 동료 의사들에게 교육용 데이터로 사용될 만큼 값지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 요청이 쇄도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나를 더욱 부추긴 것은 스승님이었다. 공보의로 근무하던 천안 병천면과 단국대치과병원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인데 스승님은 수시로 나를 호출했다. 그러고는 당신이 참석한 세미나 등에서 내게 강의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에는 못미치지지만 스승의 명예에 흠결을 내는 제자는 아니었다.

스승님의 권유로 임플란트라는 낯선 길에 들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영광의 순간을 맞기 위해선 자신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단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신의 좌우명을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내 인생 경험을 비춰보면 만나는 사람은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되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다. 거기에서 인연의 운은 갈린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다. 내가 스승님을 만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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