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3월 29일부터 이틀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주최하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주관한 ‘2018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원자력 안전규제 관련기관은 물론 원자력 산업계, 연구계, 학계의 전문가와 지역주민, 비정부기구 등 2000여 명이 참여하는 원자력분야 국내 최대 규모의 연례행사다.

올해는 소통과 갈등관리에 관한 특강, 안전기준 강화 종합대책에 대한 좌담회, 후쿠시마 사고 교훈과 방사능 방재대책에 대한 강연 및 패널토론에 이어 13개 분과별로 안전현안과 규제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규제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확인하고, 안전현안들에 대한 최신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는 ‘원자력 안전기준 강화 종합대책’ 관련 정책좌담회에 패널로 참여했다. 먼저 원안위 안전정책과장이 종합대책 수립계획(안)을 발표하고, 앞으로 수개월간 보완할 계획임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가동원전 주기적안전성평가 승인제 도입, 지진에 대한 원전부지 안전성 및 내진설계기준 등 재검토, 다수기 원전 확률론적안전성평가 규제 로드맵 마련, 사용후핵연료 규제제도 개선, 주민보호 강화를 위한 방사능 방재체계의 실효적 개선, 원자력 손해배상 무제한 책임제 도입, 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방사선 건강영향평가 추진, 안전정보 공개 및 소통 확대를 위한 법률 제정 등 8가지 대책이 포함됐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안전기준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낮게 설정돼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원자력 안전은 안전기준의 강약보다는 실효성 및 합목적성과 철저한 이행여부 확인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원자력 안전에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원안위가 ‘안전기준 강화’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제시된 대책들이 우리 원전의 안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지길 기대하면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원안위는 미국과 유럽의 규제체계 중에서 어디에 가깝게 운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필요한 요건과 기준을 상세히 정하고, 충족 여부를 문자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 결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유럽은 요건과 기준이 덜 상세하거나 때로는 추상적인 경우가 많아 이행단계에서 규제기관과 사업자 간 토론과 조정이 중요해진다. 합리적 토론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우리나라에 유럽 체계가 그대로 도입되면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새로운 안전기준을 도입할 때는 반드시 이행여부를 확인하는 기술과 방법론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이행여부를 판단할 수단이 없는 기준은 사문화되거나 혼란을 부를 것이다.

8개 개별대책에는 국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항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주기적안전성평가 승인제는 시행 중인 제도의 법적 근거를 강화하고, 기술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진 안전성과 관련해서는 제시된 단층조사, 지진관측망 확대, 국내 고유 기술기준 개발 등과 함께 신뢰성 있는 역사지진 평가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다수기 원전 부지에 대한 확률론적안전성평가는 불확실성이 큰 사고확률 자체보다, 수행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과 통찰력을 비상운전 및 중대사고관리 절차에 반영하여 사고 가능성과 피해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방사선 건강영향평가는 신뢰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므로, 조사방법론 설계 단계에서 국제적으로 타당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안전에 중요한 의사결정은 최상의 과학기술 지식을 활용하여 올바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원안위가 자주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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