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되풀이 되는 일들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이 많다. 학교도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과연 사소한 일인가, 이대로 좋은가 묻고 싶은 것들도 제법 있다.

# 합죽이가 됩시다

최근 인터넷 신문에서 본 기사다. 조카의 입학식에 참석한 기자가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라며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장면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합죽이는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하필이면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써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단체 행사에는 질서와 정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장난과 소란으로 단체 행사를 방해하기 일쑤다. 그럴 때 교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도 여전히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다. 이제 바꿀 때도 됐다.

# 임명장 또는 당선증

신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학생자치회장을 뽑는다. 학생 대표가 되는 회장은 선출 절차에 의해 뽑힌다.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입후보 등록을 하고, 유세를 펼치고, 선거 원칙에 따른 투표를 한다. 그런데 '당선증'이 아니라 학교장이 임명장을 준다. 학생들이 진행한 모든 선거 과정을 무력화하는 조치다. 학교장이 자신이 가진 권한에 의해 임명할 것이면 애당초 선거는 왜 했는가. 물론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인정해 당선증을 주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 학교는 임명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돌아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 누구 외 몇 명

학교에는 여러 명목의 상장 수여식이 있다. 대부분은 전교 조회 때 상장을 전달한다. 상은 받는 것 자체로 보상이 된다.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아야 더 기쁜 것도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수여식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박수를 쳐대는 경우도 많다. 소수의 영광을 위해 다수가 소외되는 경우라고 할까. ‘무슨무슨 상 누구 외 몇 명'을 진행자가 외치면 해당하는 학생들이 앞으로 나와 줄을 서고 대표가 나가 모든 상장을 받는다. 한 팀으로 노력했거나 개인으로 열심히 해 상을 받는데 '외(外)'라는 말 속에 자기 이름이 파묻힌다면 기분 좋은 이가 있을까.

# 국민의례를 하겠습니다

입학식에 참석하는 어린아이들과 많은 학부모에게 꼭 국민의례를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만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국민의례를 없애자는 데는 반대다. 아이들은 단체활동과 의례를 배워야 하며, 국가의 상징과 관련된 의례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국민의례 전체가 군국주의 교육의 유산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대통령 훈령인 '국민의례규정'에 따르면 학교 행사 시 국민의례는 권장 사항에 불과하다. 교육적 목적, 행사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시행 여부를 정하면 된다. 학교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싹 바꿀 수도 없다. 또 학교문화는 수많은 일과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나열한 사례를 포함해 학교의 관행과 관습에 대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부지런한 성찰이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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