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인재양성, 지식배양, 시스템 경영…. 600여 년 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 통치철학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 우리는 기회와 위기라는 동전의 양면을 손에 쥐고 있다. 개인과 지역과 국가 모두 벼랑 끝의 절박감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지 세종을 통해 배워야 한다.

세종에게는 인재양성이 첫 번째 과업이었다.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는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선발제인(先發制人), 유심간택(留心揀擇). 먼저 일으키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 마음에 늘 인재 간택을 담아둔다는 뜻이다.

세종 곁에는 언제나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가 함께 했다. 설령 그가 천민이나 장애인일지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다. 집현전은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었고 인재양성의 요람이었다. 황희는 어머니가 노비인 서얼출신이다. 충녕대군이 임금으로 등극하는 것을 반대한 정적(政敵)이다. 그렇지만 무려 18년이나 정승을 맡겨서 국정을 보좌토록 했다. 경륜과 학문, 나랏일을 풀어내는 묘책, 검증된 인재라는 것이 그를 곁에 두게 된 이유였다. 장영실, 허조, 박연 모두 신분, 장애 등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중용했다.

세종은 백성들의 지식배양이 국력이라고 생각했다. 재가섭서(在家讀書)라는 제도를 통해 3년마다 독서휴가를 보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때 세셰스피어 휴가를 보낸 것과 유사하다. 경회루 남쪽에 장서각을 설치했는데 과거의 다양한 사례집을 보관하고 열람토록 하는 아카이브였다. 이 때문에 농사직설, 의방유치, 향약집성방 등의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전국의 성균관과 향교에 복지시설을 강화토록 했다. 집현전에 사가독서제를 도입해 수시로 경전을 읽고 독서토론을 펼쳤다. 변계량의 제안을 받아들여 젊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시켜 책을 읽고 학문에 정진토록 했다. 나라가 위기일 때는 사람을 키우고 지식을 배양해 지혜롭게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세종은 시스템 경영을 실천했다. 그는 다수결에 의한 정책판단, 합의에 위한 결론 도출, 그리고 독자적인 판단 3가지를 국정운영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를 통해 조세법을 개정했다. 탐관오리의 부패를 막기 위함이었는데 투표를 통해 제도를 개정한 뒤 이 제도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위해 초정행궁 때 시범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종일토론을 통해 경청과 경연을 활성화 하고 현안문제에 대를 해결했다. 고전을 읽고 국정을 논하는 일이 밤낮없이 진행됐으며 책임경영과 인사의 공정성을 통해 대신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또한 아첨하는 신하를 경계하고 실적과 성과로 판단했다. 성심적솔(誠心迪率). 정성을 다해 앞장서서 행동하는 것을 늘 마음에 새겼다. 사려깊은 세종이다.

이 때문에 세종은 재위 30여 년 동안 전쟁을 겪지 않고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으며 지구상 유일의 우주의 원리가 담긴 한글창제에서부터 음악, 과학, 조세, 외교, 복지, 행정, 북방 등 수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이 무려 21건이나 된다. 생생지락(生生之樂), 여민해락(與民偕樂). 생업을 즐겁게 만들고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일, 절박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세종의 정신은 더욱 유효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