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가경신 충남도교육청 학교정책과장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을 경쟁력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즉 시간은 돈이며, 재화다. 그래서 우리 세대 대부분은 방학이 시작되기 전 밥그릇으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꼼꼼하게 채워 넣었던 ‘방학 중 시간계획표’에 대한 추억이 있다. ‘쉬는 시간’과 ‘꿈나라’만 잔뜩 있다고 엄마에게 잔소리 듣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우리 세대 대부분은 공부나 일은 당당하게, 쉬거나 노는 일은 눈치 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워라벨 시대’(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살자는 신조어)라고 한다. 일과 여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꼰대’ 취급한다. 공부와 일, 잠자고 텔레비전 보는 일 외에 시간을 채울 방법을 배워보지 못한 우리 세대들은 시간 때문에 쩔쩔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시절에는 ‘촌음’을 아껴가며 공부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며 달려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대로 놀 줄 모른다고 '꼰대'란다. 서운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 몇 백 시간 걷던 거리를 고속열차로 몇 시간 만에 도착하고 남은 시간이며, 많은 신기술들로 남긴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더욱 고도화된 기술 발전으로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 더 많은 잉여 시간이 생길 것이다. 이 시간들을 우리 세대가 해 왔듯 다시 일에 투자하여 노후에 꼰대 소리 들으며 살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을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할 것인지는 아이들 선택에 달려 있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은 가공되지 않은 재화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시간을 아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재화를 어떻게 가공하고 활용하는가에 방점이 있다. 따라서 ‘시간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특히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하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재화로서의 ‘시간’에 대한 교육은 중요하다. 공부하는 방법처럼, 노는 방법, 쉬는 방법, 여유를 누리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충남교육청은 ‘쉼(,)이 있는 행복놀이’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공부로 지친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쉼’의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자는 의미가 있다. 또 놀이의 방법을 배우게 함으로써 그들의 시간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또 2018학년도부터 매주 수요일을 행사, 공문 없는 날인 ‘숨요일’로 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미 사회의 각 분야에서 잘 쉬는 사람, 잘 노는 사람이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은 흔한 사례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단순 노동량만으로 돈을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쉬면서 하는 자유로운 상상, 질 높은 관계를 만드는 여유,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놀이 등이 돈을 벌고,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시간들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허락할 것이다.

그러니 AI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시간을 소위 굴뚝 산업 시대의 우리들의 시간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선택하고 조절하고 다양한 색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공부는 물론 놀이, 쉼, 여유, 여행과 같은 다양한 경험을 선물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들에게 시간은 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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