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만해 한용운의 예술과 철학, 나라 사랑이 깃든 백담사 가는 길을 탐방했다. 백담사 탐방 안내소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길은 만해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험준한 외길이다.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세웠다. 처음은 한계사라 했다.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100개가 있다 하여 백담사라 했다. 만해 한용운은 이곳에서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님의 침묵’을 집필했다.

만해는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독립 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 3·1 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일어난 대규모 항일운동이다. 종교인이 앞장서 지식인뿐 아니라 학생·노동자·농민 등 온 국민이 분연히 일어났다. 전국 동시 다발적으로 비폭력 무저항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선언서 내용에는 민족의 자주독립은 물론 동양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인류애가 듬뿍 담겨 있다. 명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된다.

만해의 얼이 깃든 길을 걸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계곡의 이끼 낀 바위 사이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독야청청하다. 끈질긴 생명력이 만해의 정신이다. 기암절벽을 오르는 거북형상의 바위가 신령하다. 삼일 독립선언 후 재판장에서 당당하게 "조선인이 조선 민족을 위해 스스로 독립운동하는 것이 백번 마땅한 노릇인데 일본인이 어찌 감히 재판하려하느냐"고 일갈하던 만해의 강직한 모습 같다. 오직 나라를 걱정한 그의 정신은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이다. 길 따라 바람 따라 구불구불 걷다 보니 마음이 상쾌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새롭고 경이롭다. 울창한 숲길과 너른 계곡이 주는 정취가 민족의 자랑이요 겨레의 큰 스승인 만해의 인품을 닮았다.

만해는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했다.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만해는 지조와 기개로 민족정기를 만방에 떨친 독립운동가요, 사상가이며 시인이다. 백담사 만해기념관 유품을 둘러보며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방명록에 "아! 한용운 시인님은 갔습니다. 후배는 통곡합니다. 백담사 처마의 서리 달빛에 눈물 걸어 두고 갑니다"라고 소회를 적었다. 삶이란 길을 따라 걷다 길을 따라 돌아오는 것이다. 길을 걷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독백이다.

백담사 경내 앞 계곡에 무수한 돌탑을 바라본다. 계곡을 가득 메운 저 작은 돌탑은 백담사를 다년간 사람들이 쌓은 것이다. 수많은 소원, 수많은 번뇌, 수많은 중생이 남기고 간 '님의 침묵' 일 것이다. 돌탑을 바라보며 '님의 침묵' 마지막 연을 떠올려본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임을 상실한 아픔과 비극적 현실의 쓰라림을 기다림과 희망의 철학으로 승화한 만해의 몸부림이 강물에 맴돈다. 사랑과 평화의 사상으로 극복한 임의 침묵이 돌탑에 앉아 있다. 침묵의 의미는 단순한 명상의 침묵이 아니다. 생생한 삶의 몸부림과 깨달음이 용솟음치는 생성의 침묵이다. 3·1절에 즈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정신을 되새겨본 계기가 됐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