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 속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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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옆에 끼고 다니면 경찰이 잡아가는 시대가 있었다. 거짓말 같은 참말이다.

중국 진(秦) 나라 때다. 진시황은 기원전 213년 민간에서 책을 소장하거나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른바 '협서율(挾書律)'이란 법령이다. 협(挾)은 '팔과 옆구리에 끼거나 소장하다'는 뜻이다. '협서'는 팔과 옆구리 사이에 끼는 책을 끼거나 책장 등에 간직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강력한 법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진시황의 법치 노선에 걸림돌이 있었다. 유가(儒家)의 서적이었다. 진시황의 법치 노선에 반하는 내용이 많고 이 서적을 읽고 항의하거나 왈가왈부하는 유생들이 늘어났다.

승상 이사(李斯)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의약, 점, 농사 등 실용적인 서적을 제외하고 나머지 유가 서적 등 모든 책을 태워 버리지요" 진시황의 노선에 위배되는 일체의 학문과 사상을 배격하고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유생들을 없애버리겠다는 무지막지한 법이었다.

해당 서적을 30일 이내 관가에 반납해야 한다. 어기면 이마나 팔뚝에 죄인이라는 글씨를 새기는 묵형(墨刑)에 처했다. 그래도 서적을 소유한 유생은 생매장됐다. 유생 460명이 희생됐다 한다. 이를 가리켜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했다. 이 분서갱유의 하나가 바로 협서율이다. 그러니까 책을 보지도 지니지도 못했다.

10여 년간 사상을 통제했던 이 협서율은 한나라가 건국했지만 10여년 더 지속됐다. 한 고조 유방도 건국 초기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사상통제가 필요했다. 백수건달 출신인 유방이 학식을 논하는 유생들이나 이의 근거가 되는 책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유방의 차남이 2대 왕 혜제가 되자 협서율은 폐지됐다. 유학의 정치이념이 본격적으로 부활하게 된 시점이다.

2000여년이 지난 요즘 협서율의 망령이 살아났다. 스마트폰이 책을 죽이고 있다.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서점의 책장 구석에서 죽어가는 책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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