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ETRI 사업화협력실 선임연구원
[젊은 과학포럼]


ETRI 본원을 떠나 서울센터(판교 소재)에서 일한 지 6년이 돼간다. 비록 전근을 가게 돼 몸은 멀리 있게 됐지만, 필자에게 대전은 늘 고향 같이 푸근하고 그리운 곳이다. 아이들에게도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지난해 여름휴가를 대전에서 보낼 만큼 대전에 대한 필자의 애정은 각별하다.

이러한 애정의 근원에는 대전 ETRI에서 연구를 하며 보냈던 소중한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공부하던 학창시절, 교수님은 자주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갈 리더 들이다. 각자가 다른 1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사명감을 가져라" 필자는 이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너무 부담이 돼 도망가고 싶어 했던 때도 있었다. 전공 책과 씨름하며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정부출연연구원으로 진로를 택하며 일종의 사명감을 갖는 연구원이 됐다.

그런데 ETRI에 입사하게 됐을 때에는 또 다른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ETRI 연구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혹시나 필자로 인해 선배들의 업적에 오점이 생기지나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주위에는 우수하고 성실한 연구원들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 과학자가 계셨기에 어려운 문제들도 함께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외부의 시선과 내부에서 느끼는 현실과 괴리감은 갈수록 커지는 듯하다. 최근 주위에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 연구원들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GDP 대비 R&D지출이 세계 1위인데 비해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며 연구비를 더 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원들 대부분은 PBS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과제발굴을 위해 동분서주 한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과감한 도전이 어렵다. 정부에서도 문제점 해결을 위해 PBS 제도에 대한 보완책 등을 고민하고 있지만, 근본적 변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필자는 작년에 기술경영학 박사학위를 시작했다. 전공인 전자공학이 아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자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싶어서였다. 우선 필자의 힘으로 시도할 수 있는 적극적 기술마케팅을 시작해 볼 예정이다. 그간 경험과 공부하는 내용을 합친다면 알맞은 다리 역할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연구원들이 수요처를 찾고 연구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꼈을 큰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길 바란다.

이 업무가 답답한 현실에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원들이 좀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연구소의 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사회적 분위기도 과학자를 응원하고, 사기를 북돋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의 마음속에 새겨진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과거 경험이 앞으로 후배들에게도 동일하게 새겨지기를 희망한다. 연구원들이 신나게 연구하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높이 도약할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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