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에세이]


겨울 한복판의 들녘은 허허롭다. 바람은 차고 햇살조차 궁핍하다. 꽃도 지고 잎도 지고 향기도 사라졌다. 온 산하가 흰빛으로 가득하다. 아,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왔다. 갑자기 나의 삶이 시름겹다. 지나온 길이 마뜩치 않다. 광야에서 홀로 버려진 탕자처럼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면 적막강산 고립무원이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동네 아파트를 돌기도 하고 무심천을 따라 홀로의 자유를 즐긴다. 야윈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와 내 어깨를 스쳐도 눈물이 쏟아진다. 독립투사처럼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다. 지난날은 참으로 치열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으니 그 치열성은 나를 아프게 했고 나를 더욱 단련시켰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 것, 끝없이 탐구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 것, 죽순이 자라 대나무가 되듯이 언제나 반듯하고 정의로우며 희망이 될 것, 그곳이 불모의 땅일지라도 사랑을 경작하고 알곡진 열매를 맺도록 할 것….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새 해 첫날 다짐했던 이 모든 것들을 실천했는지, 지난 한 해 부끄럽지 않았는지, 나 때문에 상처받고 나 때문에 가슴 시리고 나 때문에 눈물 흘린 사람은 없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새 해에는 낮은 자세로, 성찰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지난해는 연초부터 부산했다. 지역특화 스토리를 발굴하고 특성화하기 위한 정부 공모사업 도전이 이어졌다. 충북콘텐츠코리아랩은 삼수 끝에 유치했다. 충북의 문화원형과 충북의 문화자원이 콘텐츠가 되고 산업이 되며 글로벌 자원이 되기 위한 보물창고가 될 것이다. 청주권 공예마을을 특화하고 공예문화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도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문화도시의 가치를 발전시키고 세계화하는 일이 고되지만 가슴 뛰는 자긍심으로 기억된다. 교토서밋을 통해 생명문화도시 청주의 가치를 알리고, 젓가락페스티벌은 '진수성찬'이라는 평가와 청주의 대표 콘텐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 해 처음 열린 세계문화대회는 50개국에서 500여명의 글로벌리더와 공익활동가들이 참여해 아주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마다 아픔이 있었다. 그렇지만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

고맙다. 지나온 날들아, 나의 청춘아, 사랑하는 사람아. 견딤이 쓰임을 만들 듯이 아픔과 분노와 두려움을 딛고 붉게 빛나는 꽃,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니 오늘은 불꽃이라 부르리라. 그리해 날마다 청춘이면 좋겠다. 왜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려움이 용기가 되고, 그 용기가 사랑이 되어 얼었던 대지를 녹이고 푸른 들녘을 가꾸었으니 우리의 청춘은 헛되지 않았다. 청춘이 가고 노년이 온다면 노을처럼 구름처럼 진한 삶의 여백이 되면 좋겠다. 살아온 날이 삿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 남을 진한 향기, 이만하면 됐으니 돌아가자며 손잡아 줄 벗이 있으면 좋겠다. 가장 뜨거운 기쁨도, 가장 통절한 아픔도 사람으로부터 나오니 사람이 희망이다. 고맙다. 아쉽고 비루한 것들은 흐르는 강물에 띄어 보내자. 가슴 뛰는 내일을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자. 지나온 날들아, 나의 청춘아, 사랑하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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