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대전본사 정치사회부장
[데스크칼럼]


허수아비는 주로 곡식을 축내는 새나 짐승 따위를 막으려고 나무 막대기와 짚 등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논밭에 세우는 물건을 말한다. 알곡을 쪼아먹기 위해 논밭으로 내려앉으려던 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비를 사람으로 착각해 불안감을 느끼고 결국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유사이래 허수아비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거나 고초를 겪은 새는 단언컨데 이 세상에 단 한 마리도 없다. 새가 아닌 사람이라면 허수아비가 새들에게 그 어떤 위해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새들은 논 한 가운데 그저 서 있기만한 허수비아비 때문에 스스로의 생존활동을 위협받는다. 사람이 옮겨 놓겨나 바람의 힘이 아니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허수아비 때문에 들녘의 곡식들 상당부분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허수아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존재인 것이다. 최근 대전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문뜩 허수아비의 존재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하물며 그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도 그 필요성이 있는데 열정적으로 시정을 이끌던 권선택 전 대전시장의 낙마는 대전시는 물론 대전시민 모두에게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재관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많은 공직자들이 시정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민선 6기 역점사업이었던 대전도시철도2호선(트램)이 기본계획 변경에 따라 기획재정부로부터 타당성 재조사 요구를 받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큰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대전시장이 공석상태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재부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었겠지만 정치권의 ‘주고받기’로 무려 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증액된 호남선 KTX 2단계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은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당초 고가 자기부상열차 방식보다 예산 8000억원 가량을 오히려 줄인 트램을 모범사례로 평가하지는 못할망정 타당성 재조사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자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충청권 홀대’라는 분노와 함께 행정 최일선에서 중앙정부와 소통하고 정책을 조율해야할 시장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시는 도시철도2호선뿐만 아니라 도안호수공원, 공원일몰제에 따른 민간특례사업, 유성복합터미널 등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당연히 이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공직자들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진정으로 대전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흔들림없이 일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벌써부터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 선정을 놓고도 각종 의혹제기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외풍을 막아줄 선장의 부재가 그 어느때보다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거친 바다를 항해하다 선장을 잃은 대전시가 연초부터 허수아비라도 아쉬워지는 상황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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