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신 충남도교육청 학교정책과장
[투데이 포럼]


우리 가족의 송구영신 의식은 오랜 전통이다. 매해 1월 1일 0시가 되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다. 촛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아 서로 손을 잡고 한 해 동안 감사했던 일과 새해 소망을 돌아가며 말한다. 그리고 서로 포옹하며 가족으로서 온기를 나눈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흥미로운 이벤트로, 청소년 시기에는 그들의 삶에 추억 한 자락을 선물하기 위해, 장성해서는 가족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어온 소박한 의식이다. 평범한 감사와 소망을 나누던 해도 있었지만, 기적 같은 감사로 펑펑 울며 맞이하던 해도 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낯선 행사에 어색해 하는 사위와 웃음꽃 피던 해도 있었다.

놀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집에 와서 새해를 맞이하고 총알처럼 다시 놀러 나가곤 했었다. 장성해서도 그 날만은 모든 약속을 뒤로 하고 가족이 함께 보낸다. 올해는 손주가 태어난 지 2달밖에 되지 않아 처음으로 송구영신 의식을 영상통화로 대신했다. 그야말로 자식들이 모두 떠난 빈 둥지에서 남편과 손을 잡고 마주 앉으니 이 또한 새롭다. 이런 소소한 의식도 건강하지 않다면, 화목하지 않다면, 우환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삶의 희망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 순간이 선물처럼 소중하다.

살면서 위기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이러한 소소한 가족 행사로 서로의 힘이 되어 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삶을 따뜻하게 할 소소한 행사와 추억 만들기를 권한다. 살면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보다 이러한 소소한 추억들이 힘이 되고 존재의 따뜻함을 제공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러니 올해는 우리 아이들에게 능력 쌓고 스펙 쌓으라고 다그치기 전에 추억 한 자락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선생님들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가족이 아닌 다른 성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관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만든 추억들은 우리 아이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고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뜨겁게 사랑해 주고, 열심히 추억 한 자락 만들어 주자.’ 아이들이 힘들고 거친 세상에 나가 살 힘을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온기 가득한 추억 한 자락 선물하는 것도 어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남편은 적어 놓은 2018년에 하고 싶은 일 10가지를 보여준다. '손주를 위해 마술 배워 마술쇼하기, 악기 배우기, 집 지을 연구하기, 운동 더 열심히 하기 등등 소소하지만 매력적인 버킷 리스트다. 나는 연말에 정신없이 일하다 제대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잘 정리할까? 새롭게 시도하는 일들 어떻게 제대로 해볼까? 하는 건조한 생각으로 연말을 보내고 맞이한 것 같다.

나는 오늘 2018년도 버킷 리스트를 써 본다. ‘내년 송구영신도 가족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평범한 새해를 맞이하기’, ‘2018년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게 살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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