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아침마당]


언제부터인가 '안전을 넘어 안심'이라는 구호가 우리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실질적인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올바른 소통과 신뢰를 주는 행동으로 국민이 안심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구글에서 이 구호를 검색해보니 원자력과 식약품에 관련된 항목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원자력 안전과 식약품 안전에 우리 국민의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실체적인 안전과 국민의 안심은 모두 중요하다. 신뢰기반이 튼튼하고 투명한 사회에서는 안전성이 향상되어 우수한 실적을 보이면 안심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안전을 넘어 안심'과 같은 구호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마땅한 영어 표현을 찾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구호는 저 신뢰 사회에서만 힘을 갖는 구호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사고방식이 유사한 일본에서는 '안전?안심'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된다.

필자가 이 구호를 처음 접했을 때 참신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은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실체적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자칫 '안심'이 '안전'을 억누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실질보다 명분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구호가 진정성 있게 사용될지도 의심스러웠다.

가장 큰 우려는 실체적인 안전성에 소홀히 하면서도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활동에 치중할 가능성이었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 지역주민들이 원전이 쓰나미에 그렇게 무력할 줄 알았겠는가? 가습기를 구입해 아이들에게 사용한 부모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위험하다고 생각했겠는가?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이 화재에 심각하게 취약할 줄 시민들이 예상했겠는가? 이 모두 결국 안심을 위한 노력에 앞서 실체적 안전의 확보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실체적인 안전성이 충분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데도 '안심'을 빌미로 불합리한 요구가 빈발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니 안심하지 못하겠다는 것까지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과도한 문제 제기로 사회가 벌집 쑤신 듯 요란하다가 소리 없이 묻힌 일도 한둘이 아니다. 의도적인 것이든 오해에 의한 것이든 이런 일로 막대한 사회적 낭비가 유발되고 기업이 망하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과학기술적 지식에 기반하여 수립된 안전기준을 무시하고 안심을 주장할 경우 대책이 없고, 안전을 오히려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안심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폐해는 분명하다. 첫째는 안전 시설 운영자들 스스로 실체적 안전성은 뒷전에 두고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이해당사자들이 사소한 문제들을 계속 제기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수준의 안심을 요구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정치적 또는 금전적 목적과 결합되면 합리적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실체적 안전성 향상을 위한 의욕을 떨어뜨리고 자원을 낭비하게 하여 안전성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지난 한 달만 해도 건물 화재, 선박 침몰, 크레인 붕괴 등으로 많은 분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안전을 위한 구체적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전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규모 7~8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조차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들을 새로 짓자고는 하지 않는다. 실체적 안전보다 다른 목적을 우선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안전과 안심, 모두 중요하지만 그래도 더 중요하고 일차적인 것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실체적 안전'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실질적 노력을 진지하게 해나가면서 안심을 추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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