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에세이]


23면.jpg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한다. 매년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새로운 다짐과 계획을 세워 보지만 후회와 반성의 날이 더 많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나 자신 만족할 만큼의 성과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욕심을 버리지 못한 아집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별것도 아닌 것에 상처 받고 사소한 일에 화 내며 살았다. 수많은 사람과 지내오면서 때로는 그들을 아프게도 했다. 그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자식에게 좋은 아버지 노릇도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도 늘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홀로 계시는 어머님께 효자 노릇도 잘하지 못했다. 나의 불편한 마음만 생각했지 두루두루 챙기고 마음 써 주지 못했다. 이제 생각하니 나를 중심에 두고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를 하며 살아왔다. 이제라도 마음에 켜켜이 덧칠된 편견의 허물을 벗어야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동안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습관이 안 돼서다. 내가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우리 식구들은 내 마음 다 알겠지 하고 나 스스로 속단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날이라는 생각에 가장으로서 다 하지 못한 책임에 자책도 컸다. 그래도 인내하고 용기를 주는 가족들의 정감 어린 배려가 있어 위안이 됐다. 말없이 나를 응원해준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인생이란 해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다. 내 삶의 계절이 육십 다섯 번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내 삶의 해도 어느덧 서쪽 하늘로 기울어 찬바람 불어오고 흰 눈 내리는 초겨울의 길목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보인다. 너무 높이 보아서 보이지 않던 고개 숙인 사람이 보인다. 너무 멀리 보아서 보이지 않던 나의 그림자도 보인다. 부질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세월의 뒤안길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겠다. 가족을 좀 더 사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야겠다. 그동안 내 안에 가두고 있던 아이들도 장성해 자신들만의 가정을 꾸려 나갔다. 자식에게 권위와 위엄을 내세우기 전에 다정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로 다가가야겠다. 치열하지 못한 나의 삶을 위해 다그치던 아내의 현명한 조언이 잔소리로 들리더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내에게 겸연쩍어 하지 못했던 사랑해란 말을 자주 건네는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남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홀로 계시는 어머님께 자주 들려 듬직하고 살가운 아들이 돼야겠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살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겨울로 접어드는 내 인생에 즈음해 새로 가슴을 데우고 새로 눈물을 만들고 새로 사랑을 배워서 내 남은 시간을 따듯한 온기로 살아가고 싶다. 하루아침에 나의 버릇과 행동이 변하기는 어렵겠지만, 자꾸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술년 새해 첫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희망찬 아침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