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시론]


‘성평등’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우선 흔히 아는 페미니즘은 유럽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생산의 중심이 가정에서 공장으로, 남성의 노동력만을 이용하게 되면서 여성 생산성이 배제되고 가사만 전담하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하락했던 19세기, 가부장적 가치가 중심을 이루는 가족 윤리관과 종교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태동한 것이다. 1949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서 ‘제2의 성’은 페미니즘의 제2부흥을 일으킨다. 여자는 호르몬이나 신비한 본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한마디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논리였다.

20세기는 산업화로 남성이 주도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모습에서 그 가족의 부양을 위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시대였다. 다시 생산성을 획득한 20~40대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에서 권리자가 되었고, 그들이 가부장제 틀을 과감히 깬다. 이것이 페미니즘이다. 칼 포퍼는 ‘영원히 올바른 것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사상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념은 반격과 실패, 그리고 리부트, 재조명의 전철을 거친다. 100세의 삶을 사는 새로운 시대에서는 페미니즘 또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다.

보부아르의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은 2가지 오류를 가진다. 먼저 평균수명이 100세를 영유하는 21세기에 가족의 해체와 1인가구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또 하나, 보부아르는 여성을 호르몬으로 규정하는 것을 반대했다. 물론 남녀 본성 그 자체에는 차이는 없지만 성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성 특이성(Specification)을 획득하는 차이로 여성은 2차 성징과 폐경을 경험한다. 보부아르는 폐경한 여성의 삶이 여성 일생에서 가장 주체적인 삶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당시 평균 수명이 53세였기에 페미니즘의 주 대상은 20~40대 여성이었다.

100세의 인생에서는 20년 간(인생의1/5)의 성 특이성 삶을 지낸 후, 50년간(인생의1/2)은 남녀의 삶보다는 1인 가구로서 인간 본성적 삶을 드러낸다. 20~40대에서는 가부장제, 성자유, 성폭행,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 동성애, 프로 초이스(낙태 찬성)과 같은 신념이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50대 이후 독자적 삶을 살게 되는 연령층은 인간 본성에 귀를 기울이는 에이지즘(Ageism, 노인차별)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41세 나이로 제 2의 성을 저술했던 보부아르도 폐경 후 62세 때 ‘노년’이라는 저서를 통해 노년에 대한 인간문명의 실패를 통렬히 비판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고령사회 진입은 경로(敬老) 가치관을 뒤흔들면서 에이지즘을 만들고 있다. 에이지즘은 나이, 노인, 노화 과정에 대한 편견적 태도로, 1969년 의학자 로버트 버틀러가 처음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나이 든 세대를 다른 집단으로 치부해 버리고 꼰대라 비꼬며 늙은 여자들은 무례하고 성숙하지 못한 여성으로, 또 폐경기 여성을 짜증내는 아줌마로, 독립적 삶을 사는 노인은 자식 복 없는 사람으로, 노모는 아침상을 차려주는 노인으로 묘사한다. 성공한 여성운동가조차 노모가 아침을 차려준다고 손쉽게 말하고 있으니 노년에 대한 인식이 보부아르의 저서보다 뒤떨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노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이다.

페미니즘은 35세에서 53세로 늘어난 평균 수명에서 비롯된 잉여의 시간과 노동력을 재획득한 여성 파워가 만든 것이라면, 에이지즘은 의학의 혁명으로 수명이 평균 53세에서 100세로 늘어난 잉여의 시간과 경제력의 결과다. 사회활동에서 뒤쳐졌던 노령층이 사회구성의 새로운 파워 집단이 된 것이다. 노령층의 새로운 집단화는 같은 무대에서 활동 중인 아들세대와 한정된 자원의 놓고 경쟁하게 된다. 경쟁과 새로운 변혁은 항상 혐오가 뒤따르는 법, 이것이 에이지즘이다.

100세 시대에는 성차별도 중요하지만 세대 차별, 즉 에이지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령층이 사회 구성원의 파워 집단이 되면서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명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명은 보다 높은 수준의 인간 본성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문명의 발전이며 사상의 변화이다. 영국 역사가 토인비는 “만약 지구가 멸망해 인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면 꼭 가지고 가야 할 문화가 바로 ‘한국의 효’”라고 말했다. 보부아르는 “노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 이제 성차별을 넘어 에이지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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