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의 아나키스트… 
44년 문학의 새 절창… 첫 판타지 기법 차용
근대 100년 ‘짐승 시대’ 반인간적 문화 여전
특정 정파·집단 소속않고 단독자로 인생고수
문학 위기… 많은 작가들 간절한 마음 있어야
바람같은 삶, 고통의 심지에 계속 파고들겠다

와초(臥草·풀잎처럼 눕다) 박범신(71)이 마흔세 번째 장편 소설 '유리(流離)'를 펴냈다. 이번 작품은 44년 박범신 문학의 새로운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팬클럽 '와사등(와초를 사랑하는 등대·회장 홍미애)'이 마련한 대전 출판기념회에서 작가를 만났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한국 사회 본질적인 문제와 동시대인의 삶을 관통해온 그는 '절대 눕지 않는' 현역작가다.

-44년 간 장편 43편을 썼다. 이번 소설을 구상한 계기가 있나.


"나의 오랜 귓병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해 안 되는 말을 들어야 할 때나, 글을 써야 하는데 쓸거리가 익지 않으면 귀가 가렵다. 이럴 때 면봉이나 손가락으로 후비면 단박에 진물이 흐른다. 진물이 흐르고, 딱지가 앉고, 또 진물이 흐르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고질병이다. 풍운의 근대 백년, 동아시아를 숨 가쁘게 내닫는 맨발의 주인공을 통해 내가 자주 맞닥뜨렸던 꿈의 실체를 좇았다. 내안에 은닉돼 있는 아나키즘의 발현이라고나 할까."

'유리'는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모바일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웹 소설' 형식으로 연재됐다. 10만명 이상이 소설을 구독했다.

-역사소설인데 술술 읽힌다.

"무거운 주제지만 가볍게 쓰려고 했다. 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역사는 곧이곧대로 보면 힘들다. 100년의 역사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잘 읽힐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길은 우리를 속여 왔다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앞서가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는 식의 잠언에 속지 않으려는 노력도 했다. 그래서 거침없었다. 이야기는 절로 아귀가 맞춰졌고, 문장은 손끝에서 스스로 완결되는 느낌이었다. 행복한 글쓰기였다."

그는 애초 이 작품을 1년 전 출간하려고 했다가 뜻밖의 성추문 논란에 휘말리면서 출판을 연기했었다. 그때의 얘기를 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죽음 같은 시간을 보냈다. 무수한 오해 속에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악을 쓰는 건 어른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건의 팩트를 다투거나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박범신은 반세기에 걸쳐 1000만 이상의 독자가 키워낸 사람이다. 오히려 독자들이 상처받을까봐 두려웠고 죄송했다. 난 맷집이 없는 사람이다. 감옥엔 갈 수 있어도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문장(文章)에 대한 희구는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가는 곳을 묻지 마라. 바람의 지도, 시간의 지도를 그릴 것'이라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얘기를 곁들였다. 사회적 자아는 연약하고 흔들렸지만 예술적(문학적) 자아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완곡한 말이다.

▲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박범신 작가는 “어제, 오늘, 내일도 이야기하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며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문장의 힘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팬클럽 '와사등’ 제공
-논란 이후 소설 '은교'가 여성혐오 코드로 해석되기도 했다.


"은교는 늙음에 대한 고통을 통절히 말한 것이다. 은교는 젊은 여성이 아니라, 영원히 경배하고 싶은 불멸의 가치다. 단순히, 늙은이가 17살 소녀를 탐하는 얘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행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사랑의 법칙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운 그를 향해 뛰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맨발에 관한 전설이다. 수로국(한국), 화로국(일본), 대지국(중국), 풍류국(대만) 등으로 상징화된 동아시아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떠돌이가 된 아나키스트의 운명과 '난민'의 서사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처음으로 판타지 기법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발표해온 장편들과 차이가 있다. 구렁이, 은여우, 원숭이, 햄스터 등 동물들은 유리의 여정에 동반자로 등장한다.

-소설 속 아나키스트가 혹시 본인 아닌가.

"그렇다. 소설가로 살아온 44년은 고단한 아나키스트 길이었다. 난 특정 정파와 집단의 굴레에 소속된 적이 없다. 단독자로 내 인생을 고수해왔다. 그 점에서 아나키스트로 살고자 했던 주인공 유리의 인생지향과 내 지향점이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신경림·이시영 시인, 김애란 소설가와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근대 100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근대 100년은 짐승의 시대였다. 개인의 고유한 삶, 꿈, 정체성이 존중 받지 못한 시대다. 어쩌면 풍진(風塵)의 바람이다. 짐승이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이 짐승처럼 말하는 시대이니 말이 통할 리 있었겠는가. 정글의 시대였다. 이번 소설은 193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박정희 유신에서 끝난다. 하지만 아직도 반인간적 문화는 청산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들이란 역사적인 사실조차도 오류거나 날조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주인공과 대화하는 구렁이나 은여우, 원숭이들이 나오는데 인간이 아닌 짐승의 시대에는 오히려 짐승이 인간의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반어법적인 상상력이 나를 건드렸다."

그는 사람이 짐승이 되니, 짐승이 사람 노릇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건강법이 따로 있나.

"내 별명이 왜 청년작가인줄 아는가? 늙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몸(신체적 변화)은 늙어갈지 모르지만 내 문장(文章)만큼은 늙지 않는다는 얘기다. 늘 청춘처럼 꿈틀거린다. 난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청년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체력이 있다. 몸은 지치는데 걸음은 오히려 빨라진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을 때도 밀리지 않았다.(하하) 내 평생을 관통하는 이념 같은 게 있다면 문학 순종주의다. 제도는 사람의 영혼과 삶을 가두고 옥죄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 다시 말하지만 영원한 단독자다."

그는 평생 서열 없이 살았다. 사회 네트워크에서 살짝 비켜나있었다. 풀과 나무처럼 살았다. 일종의 정글 같은 문학판에서 자연주의적 휴머니즘을 고수했다. 그는 이를 두고 감수성이 썩지 않는 방부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남들은 갑옷을 걸치고, 갑질 밑에서 살지만 자신에겐 권위의식도 없고, 어떠한 시스템에도 갇혀 살지 않으니 건강할 수밖에 없다는 자가진단이다.

-활자가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문학은 위태로운 지점에 놓여있다. 많은 작가들이 지리멸렬한 얘기를 쓴다.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한다. 자기가 얼마나 간절하게 그 문장 속에 있고 싶은지, 자기 문장을 갖고는 있는지 그것이 핵심이다. 활자가 죽으면 소수가 살아난다. 소수가 말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그 시대의 나침반, 등불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 인간적인 시대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다. 그동안은 순정, 순결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오염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였다. 내게는 젊은 날의 순정이 있다. 살면서, 버릴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내고 또 하나는 문장이다. 45년째 살고 있는 아내(황정원)는 삶과 분리할 수 없는 덩어리다. 집합체가 아니다. 삶의 맷집이 약해져도 아내가 힘이 된다. 난 가슴속에서 움터 오르는 문장을 버릴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문장을 써야만 살 수 있다. 우(右)정원 좌(左)문장이다. 참고로 아내는 누워있는 풀, 와초라는 말을 싫어한다.(하하) 몸은 아프지만, 아파하는 모습을 경계하는 것이다."

'와초'라는 호(號)는 '만다라'를 쓴 김성동이 처음 그렇게 불렀다. 술집에서 편하게 부르던 별명이 굳어진 것이다. 그는 평일엔 충남 논산 집필실에서, 주말에는 가족이 있는 서울에서 보낸다. '가난한 밥상', 쓸쓸한 배회가 논산에서의 삶이다. 와초는 "어제, 오늘, 내일도 이야기하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며 고통의 심지에 지속적으로 파고들겠다고 했다. 그의 소설 20편이 영화가 되고, 20편이 드라마가 된 것은 문장의 힘이자 불멸의 가치다.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얼굴에서 볕 좋은 와초재(臥草齋)의 푸른 문장(文章)이 펄럭였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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