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목요세평]

필자는 가끔 불협화음이나 내용 없이 떠도는 말이나 고집스런 타인들의 소리를 '공기의 진동'이라 표현한다. 소리 없이 불어오는 바람도 봄바람 가을바람 소슬바람 쐐기바람이 있듯이 바람에도 질감이 있지만 다르게 느끼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요즘처럼 가을 햇살 화사한 풍요의 바람이 부는 날, 들녘으로 야외로 차를 몰고 가까운 농촌 길이라도 나가 창문을 내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바람을 촉감으로 느끼는 것을 독자들도 좋아할 것이다.

최근 40일간의 행사를 마친 필자에게 문학을 하는 가까운 지인이 권해준 것이 있다. 석양이 떨어지는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눈을 감고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세차게 느껴보라 했다. 아니면 바람 부는 날 꽤 높은 속리산 정상에라도 올라, 역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의 질감을 오래동안 온몸으로 즐겨보라고 권했다. 그는 언제나 멀리 보길 바라고, 모든 일과 말들에 너무도 민감한 필자에게 형님처럼 여유롭게 충고해 준다. 모든 작은 소리 하나가 음악을 만들어 내고, 금관이든 목관이든 혼자 내는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고. 연약하고 작은 바람이 주위의 모든 것을 악기로 바꿔놓는 것이라고. 음악은 리듬이 맞아야 하는 것이라고. 바람은 나뭇가지도 노래하게 하고, 바람은 흐르는 계곡물에 화음을 넣고, 바람은 나뭇잎도 박수를 치게 하는 것이라고. 색과 향기가 서로 다른 꽃들이 모여 꽃밭을 이루고, 온갖 채소들이 함께 모여 샐러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이 모든 것들이 가슴을 열고 주의 깊게 오랫동안 집중해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필자에게 충고해 주고 있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이 흙의 이치지만 자연은 언제나 조급하고 바쁘고 가벼운 사람에게는 좀체 그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행복도 자연의 모습에 가까이 근접하고, 결국 그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자연에 범접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화작(化作)이라고 한다고 가르쳐 줬다. 연약한 필자가 타지에서 머무는 동안 행하라며 일러준 교훈이다. 결국 그 화작(化作)도 자아가 우주와 일치될 때 겨우 만날 수 있는 세상이리라.

청주시문화재단 사무총장의 임무에는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직과 한국공예관 관장직을 겸하는 업무다. 그리고 필자에게 연임이라는 기회를 부여하고 다시 한 번 맡겨진 일이라 연임기간 동안에는 욕먹을 각오로 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지역민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일하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학연 혈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았으니 눈치 볼 이유도 없다. 2015년 9회째의 청주공예비엔날레를 경험하면서 지역의 담론과 직접 느끼고 보고 지적받은 부분들의 적용과 변화 그리고 요구들을 담아내는 과정이 이번 10회 비엔날레였다.

1999년 1회 비엔날레를 만들고 진행하신 전직 시장과 행정공무원들까지도 만나고 지역의 수많은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종사자들과 기획자들의 의견을 오랜 시간 경청하고 내린 결론을 중심으로 진정한 '메이드인 청주'의 국제행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부족함 투성이다. 그들은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한다. 122년의 역사를 가진 베네치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질책한다. 우리 함께 '지역이 답이다'에서 한걸음 나아가 '시민이 답이다' '골목이 답이다'라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해답을 바람 부는 속리산 정상에서 끊임없이 찾아나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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