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대전시립미술관장
[목요세평]

세계의 역사상 유명한 3대 사과가 있다. 하나는 이브의 사과, 다른 하나는 뉴턴의 사과, 마지막은 세잔의 사과이다. 세잔은 프랑스의 화가로 20세기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거장이다. 그는 사과를 구조적으로 그리면서 다각도로 나타나는 사과의 본질에 집중했다.

이러한 세잔의 사과에 대해 한 화가는 "세잔의 사과는 껍질을 벗기고 싶지 않다. 잘 그리기만 한 사과는 군침을 돌게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고 평했다.

세잔은 기존의 인상파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의 빛과 색채를 섞어 표현 하는 방식의 그림을 추구했다면, 세잔은 견고성이나 조화로운 구성, 균형감을 찾는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즉 외면의 세계보다는 그 안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세잔은 사과가 썩을 때까지 몰입하고 관찰했다. 사과의 형태 안에 숨겨져 있는 내적인 생명력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뒀기 때문이다. 세잔은 단순한 묘사가 아닌 대상의 존재 자체에 집중했고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게 됐다.

이는 표현의 문제를 넘어 미술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후에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도 세잔의 사과처럼 사과를 그리는 작가가 있다. 바로 윤병락 작가다. 그의 사과는 정밀한 묘사를 통해 실제 사과처럼 보인다. 작가 본인이 직접 제작하는 변형 캔버스를 통해 구현된 사과는 3차원의 공간감이 느껴지며 극사실주의 회화를 넘어 설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시점 역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식으로 사과가 곧 쏟아질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실재를 더 실재처럼, 사과를 더 사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보는 이에게 흥미감을 선사한다.

윤병락 작가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부모님이 과수원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에게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존재였고 후에 작가가 되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사과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과 그림은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도 인기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만나는 사과로 인해 어떤 이에겐 세계미술사의 혁명가가 되어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광을 얻기도 하고, 어떤 이에겐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그림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사과가 얼마나 근사한지 깨닫고,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과 그림을 보며 우리의 삶 역시 풍요롭게 가꿔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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