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계좌 이용하는 신종수법
올 들어 천안서만 2건 잇따라

가족애를 노리고 돈을 뜯어내는 납치· 협박성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고있다.

과거 배달책이 피해자를 협박해 만나 현금을 받아내는 범행수법이 잘 속지 않자, 최근에는 가상계좌를 통해 돈을 가로채는 신종 보이스 피싱이 등장해 수사당국을 긴장시키고있다.

26일 오후 12시30분 경 천안에 사는 A씨(54 남)는 한통의 집전화를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의 전화속 낯선 남성은 대뜸 아들의 이름을 대며 "아들이 칼에 찌려 심하게 좀 다쳤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A씨는 "거기가 어디냐"고 묻자, "교도소에 나온지 얼마 안되는데 추석에 용돈이 필요해 아들을 납치해 몇대 때렸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 남성은 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아들 친구의 이름까지 대며 A씨를 위협했다.

A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남성은 "아들을 무사히 만나고 싶으면 현금 400만원을 내놓아라. 그렇치 않으면 아들은 평생을 반병신으로 살게 될 것"이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면서 수화기 너머로 "아빠 미안해 나 살려줘" 라는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결국 아들의 음성이라고 착각한 A씨는 순간 숨이 콱 막혔고, 남성이 시키는 대로 은행 현금인출기앞에 설 수 밖에 없었다. 남성은 A씨의 휴대폰 전화를 못 끊게 했다. 어쩌다 전화가 끊기면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이동하는 내내 통화를 하게 한 것이다. A씨가 남성으로부터 받은 4개의 가상계좌에 50만원씩 200만원을 입금하자, 남성은 다시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려준 뒤 나머지 200만원을 입금하라고 협박했다.

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A씨는 아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에 신고해 달라"는 쪽지를 급히 적어 지나는 행인에게 부탁했다. 그 사이 A씨는 "송금계좌에 문제가 생겨 돈이 입금되지 않는다"며 시간을 끌었다. 현금을 마련해 직접 나가겠다고 설득, 남성이 말한 약속장소로 나갔지만 30여분이 지나도록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A씨는 남성이 시키는 대로 2시간여 동안 이리저리 약속장소를 옮겨다녔다.

결국 신고를 받은 경찰이 아들의 행적을 파악하는데 성공해 A씨에게 알려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A씨는 "하루종일 고시원에 있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안았다. 그는 "아들의 신상이 어떻게해서 범죄조직에까지 노출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남성이 알려준 4개의 가상계좌는 모두 통신사 LG유플러스와 연계한 게임업체가 예금주로 돼 있었으며, 1개 가상계좌를 통해 충전할 수 있는 한도액이 50만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 중인 천안 서북경찰서는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보이스피싱 일당들에게 전달된 경로를 추적하는 한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해당 통신사와 게임업체가 부여한 가상계좌 거래 상황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의 유형이 많지만 가상계좌를 통해 돈을 가로채는 수법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협박전화가 왔을 때는 당황하지 마시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빨리 신고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한편 천안에서는 올해 3월 A씨에게 했던 같은 수법으로 50대 여성 피해자로부터 1300만원을 뜯어냈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자녀 납치 협박성' 보이스피싱피해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천안=전종규 기자 jjg280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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