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아침마당]

한국 사람들은 신문에서 그날그날의 운세를 챙겨보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필자는 호기심도 생기고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면서도 귀가 솔깃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날은 '귀인을 만나겠다'는 운세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한마디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 번 더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이 사람이 오늘 나의 귀인일까?'

만남에 더 적극적이 되고 상대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듣게 된다. 그 운세가 맞든 안 맞든 만남이 더 진지해지니 나쁠 것도 없다. 5·18, 6·25처럼 한국인들에게 아프게 기억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에게도 그런 날이 있다. 9·11이 바로 그런 날이다.

벌써 16년이 흘렀다.

당시 필자는 조지아공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고 테러가 일어나던 그 순간은 군전역자로서 맥피어슨 요새에서 열린 지휘관 이임식에 참석하던 중이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자 옆에 주차되어 있던 벤의 주인이 다가와 소형 텔레비전을 보여주었다. 이미 불타고 있던 고층 빌딩에 또 다른 비행기가 돌진하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시절 겪었던 '전쟁' 그 한 단어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9·11테러 이후 일상이 바뀌었다. 아내의 비자를 업무용 비자에서 반려자 비자로 바꿔야 했다.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하니 혼인증명서를 요구했다. 순간 멍하게 서서 아내와 함께 혼인증명서를 언제 봤는지 기억해내려 했다. 58년 전 결혼신고 때 보고는 본 기억이 없었다. 애틀랜타에 있는 집을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필자부부가 혼인신고를 한 일본대사관이었고 친구의 도움으로 50달러에 인터넷 발급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58년 전의 서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노력에 비해 참 쉬었다.

어쨌든 9·11테러는 미국인들의 일상의 패턴을 바꿔놓았다. 우송대학교는 얼마 전 디팍 제인 박사(Dr. Dipak C. Jain)를 명예총장으로 모셨다. 프랑스의 인시아드경영대학장과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한 경영학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하얏트 인터내셔널, 닛산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자문위원을 지낸 세계적 명성의 경영학 석학이다.

엔디컷국제대학을 개원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글로벌 소프트파워 인재 양성에 주력할 우송대학교입장에서는 길잡이가 되어줄 귀인중의 귀인인 셈이다.

디팍 제인 박사는 취임기념 특강에서 9·11테러와 얽혔던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장으로 부임한 날이 공교롭게도 9·11테러가 일어난 날이었다. 대학의 성장은 고사하고 학생들의 취업부터가 벽에 부딪혔다. 그때 그가 생각한 것이 동문들이었다. 동문들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정성스럽게 부탁을 했다. 다행히 동문들은 그와 그의 학생들에게 기꺼이 귀인이 되어주었다. 취업문제가 해결되고 학교의 명성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때 그는 동문의 힘, 네트워크의 힘이 굉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필자는 여러 가지를 느꼈다. 귀인은 나를 돕기 위해 늘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손을 뻗어 원하는 바를 간절히 바래야만 귀인이 나타난다. 또 어떤 면에서 보면 학생들에게나 대학입장에서나 디팍 제인 박사가 귀인이었던 것이다.

왜 세상이, 주변이 나를 돕지 않는지 투덜거릴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뜻하지 않는 복이 굴러 들어오고 생각지 않던 나만의 수퍼히어로가 짠하고 나타나지 않나 두리번거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손을 뻗어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할 생각은 왜 안했는지, 왜 내가 주변에게 귀인이 되어줄 생각은 못했는지 반성하게 된 순간이었다. 신문을 펼쳐 언제쯤 귀인을 만나게 될지 운세만 눈여겨 볼 것이 아니라 오늘은 누구의 귀인이 돼줄까 생각하며 9월의 맑은 하늘 한 번 쳐다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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