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우리나라 영화로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모두 14편, 외국영화는 4편으로 우리영화가 압도적이다. 무엇보다도 국산영화가 재미있고 시대정서를 반영해서 관객들이 찾을 터이지만 1위 '명량'이 동원한 1761만5057명(네이버 영화 및 영화진흥 위원회 자료)은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충무공을 향한 국민들의 존경심과 그분의 애국애족 정신을 활용한 마케팅에 힘입어 5000만 인구에 1700여만 관람이라는 기록은 세계영화사에 기록될만하다. 첫 1000만 관객의 '실미도'가 2003년 작품이니 불과 10여년 만에 이루어진 기록이다. 제각기 영화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흔히 보기 어렵다.

이런 어마어마한 기록 뒷켠에는 공들여 만든 영화들이 극장 스크린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곧바로 DVD나 IPTV용으로 옮겨가는 어두운 현실이 존재한다.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지인들이 출연했다는 작품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상당수 영화가 제목조차 생소했다. 우리는 지금 1000만 또는 최소한 500만 이상 끌어 모으는 상업영화에만 관심을 쏟고 그 작품들이 우리영화의 전부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저예산으로 공들여 만든 영화, 뛰어난 주제로 예술성이 돋보이는 독립영화, 무거운 테마를 벗어나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물색없는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영화가 나오기를 바란다. 1960-70년대 대량생산 되었던 국산영화<사진은 1972년 남기남 감독 데뷔작 '내 딸아 울지 마라'>가 완성도면에서는 미흡하지만 나름 관객의 애환을 달래주고 오락의 기능에 충실했던 사례가 떠오른다. 요즘처럼 수백억원을 들인 작품이 거대 배급사를 끼고 전국 스크린을 독점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영관 확보가 어려움에도 200만-300여만명을 동원했던 '워낭소리'나 '귀향'에 이어 최근 몇 십 만 관객을 모아들인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의 호조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듯이 관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영화산업의 앞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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