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필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 예술감독
[에세이]

서양음악사에서 바로크 시대는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였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를 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여성의 높은 음역을 내는 남성 소프라노를 말한다.

거세한 남성은 정상적인 성인 남자보다 몸이 크다고 한다. 몸집이 크기 때문에 여성 소프라노보다 강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렇게 여성의 높은 음역에 남성 특유의 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카스트라토는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무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카스트라토의 음악과 사랑을 다룬 프랑스 영화 '파리넬리'(1995)는 프랑스에서만도 개봉 1개월 만에 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기자들이 뽑은 특별상까지 받았다.

영화에서는 문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실제로 재현하기 위해 최신 음향기술을 총동원했다.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여성적이고 때로는 어린이 같은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저음부는 남자의 목소리로, 고음부는 여자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음색이 비슷한 남녀 성악가를 2년간 찾아다닌 끝에 절묘한 미성을 지닌 미국 출신의 흑인 테너 '데렉 리 래진'과 폴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에바 고들레프스카'의 목소리를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메츠의 아르제날 콘서트홀에서 수십 차례 녹음했고 이를 3,000여 회 편집했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저음과 고음을 넘나들면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교차되는 부분으로 파리 현대음악음향연구소(IRCAM)에서 7개월 동안 정밀한 컴퓨터 처리로 미묘한 부분까지 하나의 음색으로 만들어 주인공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 컴퓨터를 앞세운 현대 테크놀로지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성질을 다른 물질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전에 없던 놀라운 것들이 현실화가 되고 있고 우리의 삶도 그만큼 편리하고 다채로워 졌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작곡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업이 수월해 졌다. 건반만 두드리면 컴퓨터가 척척 알아서 악보를 그려내고 쓱싹 인쇄까지 끝내주는 것이다.

한발 더 나가 알파고와 같은 슈퍼컴퓨터에 기본 자료만 입력하면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음악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달되어도 인간의 감성과 영감만은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아직까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치이다. 작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작곡자의 고뇌에서 도출되는 악상이다. 이 악상은 어느 순간 환히 떠올랐다 스러지기도 하고, 아스라이 떠오른다 싶지만 꿈인 듯 잡힐 듯 말듯 애를 태우기도 한다. 그러기에 완성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인간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이러한 인간 감성은 틀에 박혀 정형화되고 반복되어지는 교육으로는 절대로 발달될 수 없기에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상상과 경험을 얘기해 주어야한다.

필자와 같은 음악가는 음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은 몸짓으로 문학가는 수려한 글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을 시간이라 칭한다면 인간은 그 반복되는 시간 들을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채워가고, 시시 때때로 변화되는 감정들을 어떻게 가슴으로 느끼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지가 더 큰 삶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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