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아침마당]

필자가 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화를 하더라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더 신나고 재미있다. 여행을 다녀도 역사적 상상과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 더 가슴을 뛰게 한다.

이번 중국 허난(河南)성 방문이 그랬다. 허난성은 칭기즈칸이 임종을 맞았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칭기즈칸이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었다. 몇 년 전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샤오(校)성을 가진 주민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몽골 복식과 생활습관을 지켜왔으며 족보와 비문을 통해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칭기즈칸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다. 필자의 가장 큰 관심은 아시아지역이고 사람을 꼽자면 칭기즈칸이다. 예전에 조지아 주의 몽골 명예대사로 있으면서 칭기즈칸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많았고 현재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거대 칭기즈칸 동상 제작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아시는 것처럼 칭기즈칸은 불과 70년 만에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룩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선정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고 ‘포춘’에서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CEO들이 뽑은 밀레니엄 최고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칭기즈칸의 죽음에 대한 권위자를 만났고 과거 몽골제국의 이동형 수도를 재현한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로 재현한 지위관용 대형 게르에 거대한 회의용 탁자와 의자에 앉아보고 칭기즈칸의 옛 영광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단지 짧은 시간에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좋아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의 삶과 생각은 분명히 배울점이 있다.

9살 어린 나이에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독살 당하자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풀뿌리와 물고기로 연명하면서 힘을 기른 후,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몽골부족을 통일하고 몽골의 칸으로 선출된다. 이후 몽골은 70년 만에 중국까지 지배하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 된다.

그는 대제국을 이루기까지 인재를 쓸 줄 알았고 전쟁에서 이겼을 때 신하와 병사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다.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천막에서 자면서 눈높이를 맞출 줄 알았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형틀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칭기즈칸이 남긴 말들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가 인생의 바닥과 죽음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다.

짧은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낼 때, 포기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때문에'라는 핑계를 쉽게 찾아낸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고 위로를 받거나 '나는 왜 되는 일이 없지?'하고 비관하기도 한다.

방문 스케줄 중에 저녁 식사로 옛날 평원을 달렸던 몽골인들이 먹었을 음식을 먹었다. 말위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말린 고기 덕분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몽골전통 음악은 8백 년 전 몽골의 정취에 젖어들게 했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필자의 학생들에게 칭기즈칸의 기운을 전해주고 싶다. “"총장님, …때문에 못하겠어요."가 아닌 "총장님, …에도 불구하고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더 많이 듣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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