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엄청난 물난리 후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허리 통증이 심해 죽을 것 같다', '아무래도 MRI를 찍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가격이 얼마냐'. 이런 전화를 하신 분들의 공통점은 이미 허리나 다리 등에 증상이 있어서 수술을 받았거나 증상이 지속돼 치료 중인 환자들이다. 증상이 심해 구급차를 타고 오셔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환자, 의료원에서는 어려워 환자가 원하는 서울의 큰 병원에 예약해 보내드린 환자, 통증이 있어도 병원에 오시지도 못 하고 약을 드시면서 기다리다 다행히 증상이 좋아진 분들…. 이 분들은 모두 이번 물난리에 본인의 몸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넘쳐 흘러오는 물을 퍼내다가 증상이 악화된 분들이다.

필자를 포함해 의사들은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몸을 살피지 않고 물을 퍼내느라 이렇게 악화시켰느냐'고.

의과대학생 시절 방학이면 무의촌 진료를 갔다. 대부분 농촌 지역으로 갔는데 그 때도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많았다. 아직도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연이 있다. 의과대학생으로서 그 알량한 의학적 지식으로 그 분들에게 '이 병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쉬셔야 합니다' 라면서 소염진통제와 비타민제 며칠 분을 드렸던 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논밭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일해야 하는 그 분들에게 쉰다는 일이 가능한가? 상황에 대한 생각 없이 그분들께는 불가능한 요구를 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물 폭탄 후 있었던 일로 의료원에서 치료가 어려워 다른 의료기관으로 보내드렸던 환자들이 수술 받고 짧은 기간을 거기 계시다 안정과 재활치료를 위해 다시 청주의료원으로 오셔서 가료 중인 분들도 계시다. 의료기관 간 효율적 협진의 한 행태라고 생각한다.

MRI 찍는 가격을 알아보시며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하셨던 분은 결국 오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병원보다는 싸지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것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우연히 만난 그 분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 '좀 괜찮아 지셨어요?'하고 여쭈니 '그려, 지금은 좀 괜찮어'하시며 얼굴을 돌리시는 모습 속에서 아직도 힘듦이 느껴졌다.

현 정부의 보장성이 강화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지금도 의료보험의 보장성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는 말을 자부심을 갖고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 있는 교민들도 몸이 아프면 귀국해 치료받고 가는 것이 훨씬 비용이 덜 든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문재인 케어'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면 3800여 개의 비급여 항목을 단계별로 급여화한다고 했다. 이제는 MRI, 초음파, 상급병실료 등이 급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 취약계층, 노인, 아동, 개인의료비 부담액을 낮춘다는 것이고 긴급 위기상황 지원강화 및 재난적 의료비 지원으로 의료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이 내용은 모두가 기뻐할 내용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걱정이 매우 크다.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의료보험 보상을 비급여 항목으로 충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병원의 운영을 위한 적정 수가 요구, 그에 따르는 건강보험료 상승, 환자의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실제적인 좋은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복지 중 으뜸이 건강복지임에 틀림없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돈 걱정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MRI 가격을 알아보고는 결국 병원을 찾지 못하고 수척해지는 환자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