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서구청장
[수요광장]

저녁 공식행사를 앞둔 대통령이 느닷없이 대중탕을 찾더니 발가벗고 들어간다. 대통령의 ‘황당한’ 행동에 경호원들은 당황할 틈도 없이 알몸 경호에 들어간다. 탕에 들어간 대통령의 입에서는 연신 ‘아 시원하다, 좋다’가 터져 나온다.

2003년 1월 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대위 본부장단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찬모임을 가졌는데 행사 전 그는 대중목욕탕을 들러 경호팀을 당황케 했다는 일화가 있다.

비록 당선인 신분이긴 했지만 일정에도, 아니 역사적으로도 없었던 대통령 당선자의 사우나 습격사건은 탈권위주의의 신호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 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행보는 이후 노무현 정부 5년 내 계속됐다. 상고 출신의 인권변호사였던 그는 가끔 속어를 쓰기도 했다.

권력을 나누기를 거부했던 일부 세력과 개혁이 필요한 대상과 시점 앞에서는 절제되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은 반대세력과 보수언론의 반격과 딴죽 걸기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지지기반이 부족한 채 너무 앞서갔던, 그래서 혹자는 노 전 대통령을 ‘시대가 낳은 미숙아’라 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5년은 주류의 기득권과 특권을 과감하게 쳐내고, 국민 참여 정치를 키워냈다는 점에서 탈권위주의와 정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그가 청와대를 비운 뒤 불행히도 우리 사회 권위주의는 욕심 많은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국민은 권력자에게 당당히 소통을 요구했지만, 불통으로 화답했다. 다급해진 통치자는 리더십과 권위 없는 권위주의와 권력으로 국민을 옥좼다.

정의는 잠시 접어두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두 전직 권력자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은 대가였다.

어느 개인이나 조직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데 이 영향력을 권위라고 부른다. 따라서 권위는 남이 이것을 느끼고 인정하는 데서 성립하는 정신적인 것이지 힘을 가진 자가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몰락의 위기에 처한 지배 계급은 기존의 권위에 집착해 그것을 강제하고, 외적인 강제력인 권력에 호소하고 의지한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이 그랬고, 걸핏하면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고, 싸우려했던 박근혜 정권이 다르지 않았다.

제 손으로 비가 내려도 우비 모자를 쓰지 않았던, 자기 여행 가방 하나도 끌지 못했던, 수해봉사 현장에서 장화도 신지 못했던 이들에게 국민은 더 이상 신뢰와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권위는 힘으로 세운다고 설 수 없고, 내려놓는다고 해서 가엾이 여겨 세워주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가장 먼저 자연스런 소통과 서민행보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끊어졌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겠노라며 적폐청산에 들어갔다.

기득권을 잃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일각에서는 ‘도를 넘은 정치보복’ 운운하지만,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개혁은 정권 초기에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 지지를 등에 업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바람 속에는 서민과 억울한 자들의 눈물, 그리고 정의가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런 개혁의 바람이라면 세력이 꺾여서도 방향이 바뀌어서도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이 인정하는 권위가 오롯이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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