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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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아이클릭아트 제공
▶닭장수에게 닭을 '봉'이라고 속여 판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 그가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고 했을 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흔한 게 물이었는데 돈을 주고 사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니었던가. 더구나 제 것도 아닌 공공의 '물'을 개인이 팔아먹는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김선달은 나루터에 앉아 물 값을 받아 챙겼고, 심지어 대동강물 전체를 4000냥에 인수하는 매매 계약까지 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물론 픽션의 인물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물장수의 내력을 쫓다보면 완전 허구도 아니다. 어쩌면 김선달은 100여년을 내다본 예지자이거나, 물을 '돈이 되는 산업'으로 본 선구자였을 수도 있다.

▶1920년대 서울은 수도(水道) 사정이 좋지 않았다. 못사는 사람들은 수도 앞에 줄을 서서 물을 길어다 먹었고, 있는 집에서는 물장수가 길어다주는 걸 사먹었다. 문헌상 최초로 '물장수'가 등장한 것은 이조 철종시대다. 세도가 안동 김 씨 집에 김(金)서방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물을 길어댔던 게 시작이다. 그가 바로 '북청(함경도) 물장수'다. 때는 다르지만 '김서근'이란 사람은 과거(科擧)보러 오는 선비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면서 살았다. 가욋일삼아 약수터 물을 길어와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장안에 '물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너도나도 물을 대달라는 부탁이 들어왔고 급기야 계약까지 체결했다. 물의 수효가 늘어나고 손이 딸리자 고향친구들을 불러 모아 '물 도가(都家)'를 차렸다. 상업적인 물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지구의 4분의 3은 물로 덮여 있다. 그런데 대부분 마실 수 없는 바닷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5000여명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내려 물이 풍부할 것 같지만, 유엔(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다.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는 대부분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결국 봄, 가을만 되면 바짝바짝 물 가뭄을 겪는다. 봄, 가을 두 계절이 사라지고, 잔혹한 여름과 겨울만이 뒷목을 부여잡는다. 평상시 물을 물 쓰듯이 하다가, 가물 때만 물을 물로 본다. 하지만 하늘은 단비를 주지 않고 폭우로 경고한다. 물을 물로 여기다간 물은 공포다. 중금속에 오염된 물은 강물로 흘러들고, 먹이 사슬에 따라 물고기가 오염된다. 이걸 사람이 먹는다. 결국 생태계순환에 따라 사람이 사람을 해친다. 그러니 물은 생명수다.

▶식당에 앉자마자 물을 갖다 주는 곳이 몇 나라나 될까. 그것도 공짜로. 유럽에서는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면서 음료수를 주문받는다. 음료수 중에는 술과 차, 물, 커피 등이 있다. 물 값이나 콜라 값이나 비슷하다. 우린 공짜에 익숙하다. 공짜 물, 공짜 반찬, 공짜 화장실, 공짜 인터넷 등등…. 지금 생수시장은 7000억 규모로 커졌다. 2020년엔 1조원대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제 물이 돈이고 물이 힘이다. '물'만은 절대 사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모두들 '봉이 김선달'에게 돈을 바치고 있다. 물을 사먹는 건, 물이 귀해서가 아니라 물을 쉽게 먹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아열대성 폭염, 절정이다. 물을 물로 보지 말자.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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