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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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원로연극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공연이 올해는 '늘푸른 연극제'로 명칭을 바꾸어 열리고 있다(7.28~8.27). 한 분야에서 수십 년 정진한 분들의 경륜을 우리는 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하지만 사회적 보답이나 인식은 아직 미흡하다. 예술원 회원이 100명 가까이 되지만 아직 일부 원로에 대한 예우에 그치고 있고 문화예술인 복지는 여전히 미흡하다.

올 '늘푸른 연극제'에서는 배우 오현경 선생이 주역을 맡은 '봄날'<사진 오른쪽>을 필두로 4편의 연극이 선보인다. 1984년 첫 공연 이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는데 가부장 전통사회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다양한 명상과 성찰을 유도한다. 그간 오현경 선생은 여러번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을 맡았는데 자그마한 체구, 80세가 넘은 노배우가 뿜어내는 존재감과 개성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현경 선생은 우리나라 배우 중 가장 완벽한 화술과 발성을 구사하는 분으로 "침묵마저 웅변으로 만드는 화술의 대가"라는 평처럼 늙은 아버지 역을 맡아 과도한 집착과 독선까지도 천진함과 유쾌한 해학으로 이끌어가는 연기를 펼쳤다.

1987년 방영된 TV드라마 '손자병법'에서 만년과장 이장수 역<사진 왼쪽>은 지금도 연기의 정석, 개성창조의 모범으로 꼽힌다. 부하직원에게는 금세 바닥이 드러날 허풍과 과시를 일삼지만 상사 앞에서는 더없이 초라하고 비굴해지는 이장수 과장의 모습은 바로 우리 사회 수많은 직장인, 가장의 단면을 전형화시켜 보여주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단련된 연기력을 바탕으로 20대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연극,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펼치는 오현경 선생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일은 즐겁다. 더구나 정치판을 멀리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같은 자리를 탐내지 않은 꼿꼿한 자존심의 프로정신도 멋지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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