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에세이]

멧돼지는 왜 사람들에게 주적이 됐을까? 멧돼지가 모처럼 산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은 곧바로 신고를 한다. 그럼 유해조수포획단이 나타나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자기의 영역인 산을 벗어난 대가치고는 매우 혹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내려와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왜 일까?

지난 달 11일 충북 옥천군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멧돼지 먹이주기 실험이다. 멧돼지가 서식하는 야산 중턱에 당근 고구마 등의 먹이를 제공해 사람이 사는 영역으로 내려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그 음식을 먹은 멧돼지는 민가로 내려오지 않고 산으로 다시 올라가 '주민 피해신고가 하나도 없었다'는 언론의 보도다.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실험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지속적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먹이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지역주민들이 용인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포수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단체장의 한계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요즘 우리주변의 산을 보면 붉은 속살을 드러낸 산이 지천이다. 전원 주택지부터 아파트 재개발지구 복토, 산업단지 및 공장용지, 골프장, 석산 등 사람들의 편리성 향유 및 욕구 충족을 위해 산지가 무분별하게 파헤쳐진다. 집을 잃은 산 진승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내려와 농작물을 훼손한다. 이 일이 반복되다보니 멧돼지는 농민들에게는 원수 덩어리가 되고 포수들에게는 표적물 된다.

보은에 조그만 밭이 있다. 이곳에 들어와 밭을 파헤쳐 놓은 것을 보면 그 힘은 실로 대단하다. 파헤쳐 놓은 정도가 아니라 뒹굴면서 농작물도 모두 박살을 냈다. 농사가 생업이 아닌 필자도 어안이 벙벙한데, 이런 피해를 당한 농민이라면 죽이고 싶을 만큼 화나지 않겠는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삶의 터전이 없어지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멧돼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처방은 사살뿐이다. 아직도 대규모 개발행위를 위한 산지 파괴 및 공장용지, 전원주택지 등의 개발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집 뺏기고 먹이 뺏겨 구걸하러 내려온 멧돼지들을 사람들은 유해조수라는 낙인을 붙여 과감히 목숨 줄을 끊는다.

이제부터라도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녹색산지 총량제를 설정해 무분별한 개발행위 및 파괴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또한 자연에서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멧돼지 상층 먹이사슬을 복원해야한다. 또한 피해를 당한 농민에게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밭에 농작물마저 없다면 멧돼지는 모두 민가로 내려 올 것이다.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민통선을 농민들이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멧돼지 먹이주기는 매우 유의미한 실험이다. 이 실험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은 고민해야 한다. 미래의 후손들이 '멸종야생동물 멧돼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선조들을 원망하는 기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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