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
충북본사 편집국장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게 나라냐?’는 장탄식이었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 본 지난 4년간 청와대의 작태는 한마디로 '한심' 그 자체였다. 21세기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중심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 비정상 행태의 총합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를 귓등으로 들은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파면, 구속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염원한 것은 바로 ‘이게 나라다!’는 가치를 바로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드리워 있는 적폐를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내각 구성과정을 지켜보면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에 연루된 인사는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자조섞인 얘기도 있지만, 깨끗한 사람 찾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 만큼 힘드니 하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걷어내야 할 적폐가 정치권뿐만 아니라 도처에 쌓여있다는 점이다. 직속상관인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33세 검사, 대학교수가 대학원생 제자를 상습적으로 구타하고 인분까지 먹인 사건 등 이른바 갑질 횡포가 매스컴의 주요 뉴스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의 성추행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은 또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과 마찰을 빚은 '갑질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맹점에 치즈를 강매한 일명 '치즈 통행세' 의혹, 탈퇴 가맹점을 상대로 한 보복 출점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면서 정우현 전 회장의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처럼 재벌 총수나 대기업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애꿎은 가맹점들이 피해를 보는 ‘오너리스크(owner risk)’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갑의 잘못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을의 위치에 있는 가맹점주들은 영업손실 등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사건 등 그동안 오너나 그 일족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니고 업종이나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늘도 패권적 제왕주의에서 파생된 갑질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낱 의식 없는 미천한 여편네(최순실)가 재벌을 등쳐 수백억 원의 ‘삥’을 뜯을 수 있었던 것도 대통령의 ‘빽’을 등에 업고 조자룡 헌 칼 쓰듯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이 같은 비뚤어진 갑질을 고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흔히 뉘우침이 없는 역사는 비극을 반복하고, 청산이 없는 역사는 미래를 지워버린다는 말이 있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은 탈각(脫却)과 자구의 몸부림뿐이다. 허위에서 벗어나 실다움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또 다시 경책하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